부산지하철에는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게시판이 있다. 여기에는 총파업 포스터, 대통령을 비판한 광고도 붙인다. 고통 받는 비정규직 사업장과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의 주장도 단골메뉴다.

부산지하철 88개 모든 역에 있는 279개 노동조합게시판을 통해 노동자와 진보세력의 주장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한다. 0.5평에 불과한 작은 공간이지만 노동자의 말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활동을 알리고, 공익적인 광고만 싣기로 정해 놓은 이 게시판에 처음으로 상업광고가 붙었다. 김용철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다.

이 광고를 준비하면서, 누군가는 왜 책광고냐고 물었고, 또 누군가는 진보언론도 싣지 못하는 그 광고가 괜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지 걱정했다. 그렇게 광고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냐는 말도 했다.


부산지하철역에 책광고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붙었다.



부산의 노동조합, 시민단체, 네티즌들의 자발적 홍보 
게시판에 붙은 것은 책광고 포스터지만, 이를 통해  용기 없는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깟 광고쯤 별 일 아니라고 알리는 일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삼성을 비판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진보언론조차 쉽게 하지 못한 일이었을까...
책을 만든 출판사에는 우리의 일을 간략히 설명하고, 우리가 직접 광고를 만들어 지하철역마다 다니며 포스터를 붙였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에서 제안하고, 부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부산희망촛불에서 동참한 ‘삼성을 생각한다’ 자발적 홍보는 이렇게 시작했다.


지하철에 부착한 자발적 홍보 광고는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학생들의 동참으로 부산대학교 교내게시판에도 50여 장을 부착했다. 자발적 홍보가 진화한 것이다.

부산대학교 교내에 붙은 '삼성을 생각한다' 자발적 홍보



이 책은 출판사가 하고자 했던 대부분의 광고를 거부당했다. 그렇지만 의식있는 시민들 스스로 이 책의 가치를 알았고,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한 온라인상의 입소을 퍼뜨렸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가 뒤늦게 시작한 자발적 홍보는 오프라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책의 존재를 알리는 의미가 있다.

부산지하철 서면역에 붙은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를 바라보는 한 시민



자발적 홍보의 진화

책광고를 붙인 후 참가 단체 담당자들은 다시 모였다.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 지 머리를 맞댔다. 3개 단체가 시작한 일을 더 많은 단체에게 알리고, 그들이 부담없이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블로그(땅아래 - blog.busansubway.or.kr)을 통해 알리고 있는 ‘자발적 홍보’를 많은 사람들도 함께 개인블로그를 통해 ‘삼성을 생각한다’를 알리도록 단체 회원들에게 설명하기로 했다.

책내용을 알리기 위해 책 공동구매도 준비하기로 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조합원, 부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회원, 부산희망촛불 회원들이 책을 구매하면, 그로부터 발생한 수익금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쓰러져간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자본주의의 꽃, 광고조차 거부하는 삼성

출판사에 따르면 부산지하철 전동차 광고를 준비했지만, 광고를 담당하는 업체가 거절했다고 한다. 광고수주가 없어 빈공간이 많은 부산지하철 전동차 광고에 대비해 볼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비정상적인 압력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반면 공익을 위해 활용하는 부산지하철 역사게시판은 돈이 없는 노동시민단체의 광고로 항상 넘쳐나고 있다.

이 소중한 공간에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시급한 노동자의 투쟁을 알리는 일을 잠시 멈춰야 한다. 돈을 들여 하겠다는 광고를 지하철역 노동조합 게시판에 대신 하기 위해서는 돈도 없고 고 언론도 다루지 않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미뤄지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유훈으로 간직한 기업, 반도체를 만드는 사업장에서 백혈병으로 계속 사람이 죽어가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기업에 대해 모두 침묵하고 있는 세상만큼 역설적인 상황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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