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까지도 폭우를 퍼부은 하늘이 우리의 생태기행을 도저히 허락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부산 동래역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도 날씨는 우리를 무척이나 불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첫 기행 장소인 우포는 우리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물기를 완전히 걷어낸 파란 하늘을 보여주었습니다.
 



생태기행에 나선 가족들은 버스가 마술과 같다고 느꼈을 거 같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리자 전혀 다른 세상이 나왔으니까요. 우중충한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색이 되었고 꽉 막힌 회색 콘크리트의 도심은 녹색의 나무와 풀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연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들뜨게 했습니다. 전신주 하나 없는 공간은 너무나 시원했습니다. 대지를 한결 같이 덮은 녹색은 부드러웠습니다. 고인 물과 관목들은 그 위에 알듯말듯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먼저 우리가 만난 건 살아있는 자연이었습니다. 




자연과 자연 사이에 역사도 만났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를 들렀습니다.




신발만 벗으면 누구든 선생의 생가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잘 보존된 옛집의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보고 느꼈습니다. 




생가가 열어준만큼 역사는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이 일제시대 독립자금의 60%를 공급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 시대 태어났다면 우리는 선생처럼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잠시 빠졌습니다.




살아있는 자연에 이어 살아있는 역사를 봤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이 안아준 만큼 우리는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긴 웃으라지만 웃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들의 삼엄한 눈길 아래서 미친놈 아니고서야 웃을 수는 없겠죠.  




우리를 긴장케 하는 건 경찰만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프랭카드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었습니다. 신경질 내고 명령하고




위협하는 프랭카드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왜 그들은 경찰을 동원하고 프랭카드를 걸면서 우리를 위협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가는 자연에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강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입니다. 쑤시고 




칼로 긋고 자기들 맘대로입니다.

이렇게 강을 죽이면서 그들은 강을 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 살려놓은 강을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드는 건 살아 숨쉬는 자연이 아니라 거대한 수로입니다. 이제 여기엔 강이 아니라 그냥 물이 흐르게 될 겁니다.




파괴된 자연은 트럭 아래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녹색은 풀썩거리는 먼지가 되어 피어오릅니다.




예전의 그 땅에 있던 녹색의 자리가 싹 걷어졌습니다.




버스의 마술은 여기선 반대로 트럭의 마술이 되었습니다. 하이에나 같은 트럭들이 그 아름다운 자연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자연의 생태를 그대로 느껴본 생태기행이었습니다. 아침에 우포를 보고 오후에 4대강 공사현장을 보면서 자연의 생사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의 삶과 죽음도 인간과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자연은 들뜨고 놀랍습니다. 죽어가는 자연은 불안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올해도 벼가 황금색으로 익었습니다. 자연은 이렇게 어김없습니다. 낙동강은 이 벼처럼 내년에도 어김없이 흐를까요? 흘러드는 곳마다 녹색을 입히면서 어김없는 자연의 힘을 발휘할까요? 자신을 죽인 우리를 자연은 항상 안아줄까요? 낙동강의 죽음이 두려워집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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