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부터 24일까지 일본 JR동노조 청년 대의원대회를 견학하고 쓰는 세번째 글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일본 청년 노조원이 한국보다 기대되는 이유
탈원전 외치는 일본 청년 노조원들


일본 JR동노조 청년들과 1박2일 동안 아주 집중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2차례의 간담회를 가졌고 끝난 후에는 자리를 옮겨 술자리에서 못다한 이야기와 여흥을 나눴습니다. 





일본 청년들은 한국 측 노조원들과의 만남에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첫날 교류의 시간에 청년부 간부들은 돌아가면서 우리 자리에 찾아와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는 게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대화는 둘째날 간담회부터 오갔습니다. 


 


일어선 이 사람은 전날 저녁 그중에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눴던 청년부 간부입니다. 승무 소속이라는 말을 듣고 한국의 지하철 자살에 대해 얘기하며 승무원 중에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놀랍게도 자신이 운전한 지하철에 사람이 뛰어든 적이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고 다리가 후들거려 한동안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도 지하철에서의 자살자가 적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청년부 대의원이 되었냐는 물음에 모두들 웃으며 사진 오른쪽에 카리스마 충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에가와상을 지목했습니다. 에가와 선배가 사주는 술을 먹으며 따라다니다보니 어느 순간에 노조활동을 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일본 청년부 노조원의 고백(?)은 일본의 노조조직이 교육이나 대의명분에 앞서 인간관계에 바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일본 내 노조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은 편인데 특히 철도노조의 경우 60-70년대 파업에 대한 기억으로 더 안좋은 편입니다. 청년부 간부들도 JR동일본철도 입사 시 어른들이 철도노조에 대해 우려스런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노조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도 가족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노조의 조직활동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JR동일본노조가 찾은 돌파구는 써클 활동과 인간적인 접근이었습니다. 이념이나 대의명분을 주장하기보다 써클같은 레크레이션 활동이나 선후배 간의 유대관계를 쌓아가는 접근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부의 주요 활동도 써클 간의 체육대회를 지원하고 개최하는 것입니다. 사측이 체육활동을 주로 지원하는 한국과는 반대인데 이건 한국노동조합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부분인 것 같았습니다.  

청년부 간부 한명에게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기 위해 얼마나 돈을 쓰냐고 물었습니다. 용돈의 반 정도를 쓴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간부는 가입된 써클이 몇 개냐는 질문엔 전부 소속되어 있다고 답했습니다. 집에서 괜찮냐고 하니 간부들 아내끼리 모여 우스개로 서로 (남편을)포기했다는 식의 얘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마지막날은 서로가 공유하는 걸 꺼내면서 꽤나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쪽에서 마징가젯 주제가를 불러주자 일본쪽에서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어렸을 때 봤던 황금박쥐, 이상한 나라의 폴, 미래소년코난 등 일본만화영화 주제가를 함께 부르면서 분위기는 확 달아올랐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일본쪽에서 좋아하는 한류드라마와 가수들 이름을 몇명 불러주었고 우리쪽에서 "나도 좋아한다" 는 식으로 맞장구가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한일대화합의 현장이었습니다.

 



일본JR동노조는 과거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탄압받을 때 JR동노조원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살리기 위해 열차의 기적을 울리는 시위를 한적도 있습니다. 독재정권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 김대중이라는 이름도 입밖에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일본 노동자의 연대는 한국의 학생과 시민들에게 적잖은 힘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요즘엔 일본 노동자들이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힘을 얻어간다고 합니다. 80년대 이후 침체의 길로 접어든 일본 노동조합에게 한국노동조합은 배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일노동자교류에 일본이 좀 더 적극적인데 매년 11월 노동자대회 때는 백여명에 가까운 일본 노동자들이 한국을 단체로 찾아 한국노동자운동의 역동성을 직접 경험하고 갑니다.

   



일본 노동자와의 대화에서 한국 측을 가장 놀라게 했던 건 이미 오래전에 정착된 일본 복수노조에서의 각 노조 간의 관계였습니다. 일본 노동자들은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더라도 노조가 다르면 서로 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음료수나 컵 같은 것도 같은 노조원들끼리만 공유합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일본 왕따문화가 노조활동까지 이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복수노조시대를 맞이한 한국으로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기업·조직문화의 한국노조에서 일본같은 갈등과 배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렇게되면 복수 노조 간의 갈등과 대결로 권력과 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연대는 거의 불가능해질 수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보다 더 강력한 연대의 방해물이 곧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 찾은 한일노동자 교류의 흔적. 정권이 바뀌었는데 좀 바뀌어야할듯 ^^



간담회 끝에 한국의 노동조합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한 노조원이 노동자대회 때 여성노동자들이 마이크를 들고 앞장서는 게 놀라웠다며 한국의 여자들은 그렇게 투쟁적이냐고 물었습니다. 한국 여자들이 좀 드세다고 답해서 다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해석하면 '끈'




일본에서 만난 청년노동자들은 11월 노동자대회 때 한국을 찾을 예정입니다. 그때 다시 만나면 전태일 열사 깃발 아래 한일노동자들이 K-POP과 마징가젯을 같이 부르며 막걸리잔을 기울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일을 오가며 한국과 일본 노동자 간에 끈이 매어지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겁니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판하고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일본노동자와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한국노동자 간에 끈이 연결된 세상은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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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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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강여호 2011.09.18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 연대를 생각하게 하네요.
    일요일 아침에 희망이 듬뿍 담긴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