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객차 문을 열자 커피향이 확 쏟아진다.

"냄새 참 좋습니다. 천원이니까 부담없습니다. 사라는 거 아닙니다. 냄새 함 맡아보세요. 마시는 커피가 아닙니다. 커피향입니다. 알이 130개 들어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 머리가 맑아집니다. 이거 마트에서 3천원합니다. 냄새 맡아보시고 나중에 마트에서 사셔도 됩니다. 마트에선 3천원."

아저씨의 쉰 경상도 말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발음이 구수하면서도 분명하다. 물건 홍보도 요점만 딱 얘기한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도 불쾌한 표정보다는 손에 든 것에 호기심이 더 어린 표정이다. 





바로 옆의 자리에 앉은 손님 한 분이 아저씨가 방금 무릎에 놓고 간 방향제를 만지작 거린다. 알을 눌러보기도 하고 냄새를 살짝 맡아도 본다. 그러다 결국 지갑에서 천원짜리를 한 장꺼낸다.

역시 최고의 장사술은 견물생심이다. 사람들 앞에 물건을 들이대 만지고 보고 냄새 맡게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마케팅은 없다.

하지만 저런 마케팅엔 감수해야할 위험도 좀 있다. 물건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다. 한 아주머니가 소리쳐 커피향을 건네주지 않았다면 이 아저씨도 이 객차에서 한 개를 잃어버릴 뻔 했다. 하루에 몇개나 잃어버릴까? 그거 제하면 얼마나 남을까? 커피향 한 개를 사면서 보니 아저씨 손에 3-4천원 정도가 쥐어져있다. 이 객차 안에서 판 것이다. 

지하철은 종착역 노포동을 들어갔다 나와 다시 신평을 향해 달렸다. 좀 지나자 다른 분이 타신다. 아까 아저씨보다 가방이 좀 작다. 이번엔 벽걸이다. 가격은 아까와 같은 천원. 이 아저씨는 앞의 아저씨보다 젊은데 목소리가 좀 더 작고 잘 안들리는 편이다. 표정도 약간은 불안한 모습이다. 이 아저씨 것도 샀다.





얼마전엔 구두주걱을 겸한 먼지닦이도 샀다. 이렇게 해서 최근 지하철에서 천냥짜리 세개를 장만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먼지는 잘 닦인다고 한다. 오늘 산 것들은 어떨까? 오자마자 방향제를 화장실에 달고 아이 방문에 벽걸이를 걸어 보았다. 아이의 방문은 예뻐졌고 욕탕은 커피향으로 은은해졌다.

지하철엔 천원짜리만 있는 건 아니다. 허리띠는 오천원인가 하고, 70, 80 음악시디와 면도기는 만원이다. 작년에 히트쳤다는 토씨는 3천원이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가장 큰 돈을 주고 산 건 후레쉬였던 것 같다. 아마 3천원인가.


살길 막막 지하철 행상들 ‘과태료 공포’


그런데 이렇게 지하철 안에서 1000원짜리 물건으로 은근 눈길 돌리게 하는 지하철 퍼포먼스를 펼치던 지하철 행상들이 요즘 고난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시가 공포한 ‘철도안전에 관한 사무위탁 규칙’이 올 3월1일부터 시행되면서 지하철 행상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지하철 운영기관 직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예전엔 경찰이 부과하던 과태료를 지하철에서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와 함께 과태료도 3배가 넘는 10만원으로 올랐다. 지시를 어기고 계속 행상을 하면 100만원도 부과된다고 한다. 

부산은 아직 아니라고 한다. 알아보니 직원들이 지하철행상에 요구하는 건 각서다. 수사대에서 과태료를 끊기기도 하지만 서울처럼 10만원은 아니다. 혹시 이러다 서울지하철 행상이 과태료로 장사하기 힘들어져 부산으로 피신 내려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부산지하철행상도 경쟁이 치열해질텐데.

보통 행상들은 출퇴근시간을 피해서 장사한다. 타고다니면서 지하철행상을 주로 많이 본 시간은 오후 1-3시 사이인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영업이 어렵다. 또 손님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지하철행상들도 자체적으로 복잡한 시간은 피하는 것 같다. 

한 낮엔 보통 학생이나 노인들과 주부들이 많이 타는데 지하철행상의 영업행위에 그들이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는 것 같진 않다. 이날 낮에 본 손님들처럼 지하철행상이 활동하는 시간대엔 호기심을 자극하는 행상의 물건과 말에 궁금해하며 처다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하철엔 나른한 오후에 신기한 물건과 행상의 홍보 퍼포먼스를 즐기는 느낌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괜히 기웃거리고 물건을 두고 눈길과 얘기를 나누면서 더 친숙해진 기분이 들게 된다.

중국제가 대부분이라지만 원가가 작기 때문에 지하철행상으로 유통되는 금액의 상당부분은 국내경제에서 유통된다. 그러니까 지하철행상의 물건이 팔리는만큼 한국경제의 활력에 기여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하철행상도 적으나마 불황의 시대에 경제활력을 위해 뛰는 경제전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그 작은 물건을 유통함으로써 먹고 사는 사람이 있고, 행상을 그만두면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분명 있다.

불경기가 커지면서 실직자들이 속절없이 쏟아지고 있다. 지하철행상이라도 하겠다며 나서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철행상을 근절하겠다며 나서고 있다. 없는 사람들이 불경기에 내몰리고, 법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서울지하철에서 쫒겨난 사람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 서울시가 이 걱정을 한번이라도 해봤을지 궁금하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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