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삼성재벌의 ‘어둠’을 나타내는 비자금, 경영권 불법승계, 무노조경영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공론화되어 온 것들이다. 김용철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국가기관이 묻어뒀던 ‘삼성비리’의 전모를 공범이던 저자가 직접 생생하게 밝힌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분노하며, 몰입했다. 


그런데 정작 책을 읽은 후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후 그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이었다. 저자 스스로도 ‘삼성에서 고위 임원을 지냈던 내가 삼성을 고발할 때 돌아올 온갖 비난’을 두려워했고,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패륜적 변절자,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현실을 담담히 토로했다.


저자는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내 손가락만 못생겼다고 탓’하는 패거리문화가 사회 정의를 외면하고 비리를 고착화하는 원인이라고 했다. 그 속에서 삼성비리가 탄생한 것이라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소속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만을 중시하는 분위기 탓에 옳지 않은 일을 하더라도 동료 및 선후배들에게 좋은 평가만 받으면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인맥을 통해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 자신이 속한 인맥 그물에서 떨어져나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한번 따돌림 당하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겪는 것도 한 이유다.’(김용철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414쪽)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삼성을 생각한다’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면, 삼성에서 호위호식하면서 비자금을 은닉하고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이 삼성을 배신하고 쓴 무용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꼭 있다.
수구언론에서 떠들던 내용이라 해도, 우리 사회가 양심고백이나 내부자고발을 대할 때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의식의 단면이다.

저자 역시 양심고백 후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삼성에서 누릴 것 다 누려놓고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치느냐’라고 했다. 저자 말처럼,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패륜적 변절자,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조직의 성격이나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에 상관없이 맞닥뜨리는 두려움이다


‘인간적으로 친하기만 하면, 무슨 짓이건 허용된다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다. 인간적인 친분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을 지적하는 게 진짜 용기다. 그리고 이런 용기를 지닌 이들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비리도 줄어든다’(같은 책 415쪽)


보통의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 집착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왕따를 당할까 두려워한다. 관계를 통한 ‘인간적 친분’은 허물을 보듬고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준다. 저자의 말처럼 ‘허술한 사회안전망’속에서 개인의 삶을 지켜주는 보호망이 되고 있다. 이를 박차고 나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권해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저자 자신의 허물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사회를 갉아 먹는 거대악을 폭로하는 용기를 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서 김용철 변호사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이유다.

이 책은 삼성비리를 고발한 책이다. 저자도 말했듯이 삼성비리를 단죄할 주체는 국가기관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삼성비리가 묻혀버린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를 통찰했다. 소속 집단의 문제를 고발하는 내부자에 대한 관용과 보호가 사회를 더 정의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를 지향하는 집단에서도 내부 고발은 쉽지 않다. 그러다 제때 도려내지 않은 환부는 언젠가 곪아 터진다. 사회 진보를 말하며 노동운동을 하는 내게 이 책은 우리안에서도 작동하는 패거리문화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줬고, 정의를 보는 시선을 교정시켰다. 옳지 못한 일을 고발하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자성이며 성찰을 동반한 진짜 용기라는 저자의 말을 새겨본다.



이 글은 부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소식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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