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희망버스 일본에서도 왔습니다. 일본JR동노조 관계자 4명이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위원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 왔습니다.

이들은 바로 올 수 있었지만 시민들이 결합한 노동운동을 직접 보고싶어 서울에서부터 희망버스를 타고 돌아 부산에 왔습니다. 부산역 집회를 함께한 후에는 다른 희망버스 시민들처럼 영도로 향했습니다. 일본인들은 단순히 희망버스를 보러 온 게 아니라 희망버스 순례를 함께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일본 분들은 부산에서 10여명의 일행을 이루어 움직였습니다. 서울에서부터 동행한 국제노동자교류협회 관계자들과 부산에서의 안내를 맡은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조합원들, 그리고 취재차 참여한 저와 대학생 기자 등이 이 일행에 함께 했습니다.

영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일본 분과 함께한 우리 일행이 통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도 아닌데 시민의 통행을 그렇게 심하게 차단할리 없고 더군다나 외국인 일행을 막아서는 무례를 범하지는 않을 거라 봤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막아선 사람들은 상식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포동역에서 내려 부산대교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도착하자 통행을 막는경찰들이 보였습니다. 예상한 장면이지만 실제로 보니 함께 한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래선지 순간 나도 모르게 "왜 길을 막아"하며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침착했습니다. 한국에서 안내한 분들은 운동이라면 한가닥씩 해봤다면 해본 분들입니다. 경찰에 맞서는 건 숱하게 해본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조용한 데엔 다 뜻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분위기에서 그 의미를 퍼뜩 알아차리고 경찰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우리의 첫번째 목적은 일본에서 온 4분을 안전하게 85호 크레인 앞으로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충돌은 피하고 속이 뒤틀려도 우리를 막아선 사람들을 최대한 설득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 막아선 경찰은 외국인 일행을 막아서진 않을 거라는 우리의 예상대로 움직였습니다. 여권까지 확인한 경찰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막지는 않았습니다. 겉보기나 정황상 희망버스 시위대열이라 볼만했지만 일본 분이 있어 잘못하면 국제적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막기 어려웠을 겁니다. 폭력적 검문을 실시하는 중에도 경찰은 나름 합리적 판단을 한듯 합니다.

사실 우리 일행도 일본 분들을 모시고 행사에 끝까지 참여할 순 없었습니다.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인사하고 희망버스의 집회를 잠시 지켜본 후 나올 생각이었습니다. 일본 분들과 이날 행사에 대한 설명과 소감을 나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 키 큰 남자는 민중의 소리 기사 속 영도구 한나라당 이경춘 구의원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진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계단을 올라 부산대교 위로 올라서자 "희망버스 반대"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저기 막아" 하며 몰려들었습니다.

두번째 저지선은 경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폭력적이었습니다. 경찰이 통과시켜주었다고 말했지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통과시켜도 자신들이 안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일본인과 함께한 일행임을 강조하며 여권을 보여주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확인한 몇분이 "맞네"하며 통과시킬라는 찰라 반대쪽에서 다시 "저기 간다" 하며 머리띠를 두른 다른 무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제 그 무엇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행을 막아선 사람들은 "아무도 못 들어간다. 영도 주민도 못 들어간다"며 목청껏 높였습니다. 영도 구경도 하고 음식도 사먹어야 하지 않냐며 달래도 "당신들 영도 안와도 된다"고 했습니다. 너무 기가막혀 항의를 하자 이젠 "개**", "십**" 욕설이 막 날라왔습니다. 한번 시작된 욕설은 그때부터 우리 일행이 떠날 때까지 수분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일본 분 중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욕설을 듣고 항의하다 그들에게 뒤로 떠밀리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 어떤 분은 희망버스 때문에 영도주민의 고통이 너무 크다며 우리에게 통탄의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한진중공업 앞에 모인 해고노동자들과 한달전 있었던 봉래교차로 시위가 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않았지만 억장이 무너질듯 가슴을 치는 그 기세에 뭐라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두어시간 뒤 영도대교를 통해 영도 봉래교차로까지 갈 수 있었는데 그때 살펴본 희망버스 대열을 구경하는 영도주민의 표정엔 통탄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봉래교차로에 모인 주민들은 인상을 찌푸리기보다 호기심 어린 눈길로 희망버스 대열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군화발이 다시 정권잡아야 한다는 말도 들리고 놔두면 알아서 끝낼텐데 경찰이 와 저래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시각들은 있었지만 현장의 주민들은 통탄보다는 오히려 전국적 이슈가 된 동네의 모습이 흥미롭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우리를 막아선 부산대교 앞에서 이상한 말도 들었습니다. 누군가 "12시 넘으면 그때 오던가"라고 했습니다. 이분들이 12시 넘으면 철수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부산대교 앞에서 막아선 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일 수도 있다는 건가?

부산대교에서 우리 일행을 막아선 사람들은 뭔가 경쟁적으로 나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모습을 나타내자 한무리가 뛰어왔고 여권을 보고 그들이 물려나려니까 다른 무리들이 또 다시 달려들었습니다. 새로 온 무리들은 여권도 필요없다 했습니다. 새 무리가 나타날 때마다 저지의 강도는 더 세어졌고 나중에는 욕설이 들리고 몸을 떠미는 폭력도 나왔습니다.

부산대교 앞의 그들을 보고 있으니 한국에서 빗속의 김정일 초상화 붙들고 우는 북한 여성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북한 전문가의 설명에 의하면 빗속의 김정일 초상화를 보고 울며 달려가는 북한 여성들은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잘못하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상경쟁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통탄할 일도 아니고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닌 일에 이렇게 격렬하게 나서는 머리띠 두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도 북한 여성들처럼 속사정이 있어 그러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결국 20여분의 실랑이 끝에 우리 일행은 부산대교에서 물러났습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일본 분은 이 상황을 동료 일본인들에게 계속 통역했습니다. 통행의 자유가 불법적으로 막히고 그 침해되는 권리를 경찰이 눈감는 한국의 후진적 민주주의가 일본 분에게 그대로 중계된 것입니다. 다행이라면 그들은 김진숙을 존경하고 한국의 희망버스 운동을 경이롭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망친 한국의 이미지를 희망버스와 김진숙이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완전히 물러난 후 한국말을 잘하는 일본분에게 부산대교의 상황에 대해 변명성 설명을 했습니다. 집회에 대해 경찰이 이렇게 반응하는 건 지난 정권 10년 간 없었던 일이고 이명박 정권 들어와 발생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머리띠를 두른 사람은 주민자치조직인데 한국에서 주민조직은 여당이 주로 동원하는 보수단체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여당과 연관된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우리 일행을 막은 사람 중엔 한나라당 구의원도 있었습니다. 당시엔 몰랐는데 민중의 소리 기사 속 영도구 구의원의 모습이 우리가 찍은 사진과 영상 속에도 있었습니다. 지역의 구의원이 욕설을 하고 불법적으로 검문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외국인 일행을 막은 것인데 과연 이게 아무 문제도 없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의원이 소속된 한나라당은 참 이상한 당일듯 싶습니다.

일본 분들도 12시 넘어 영도대교를 통해 봉래교차로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희망버스 대열을 얼마간 지켜보다 85호 크레인까진 결국 못 들어가고 영도를 나왔습니다. 나중에 남포동에서 다시 만나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지못해 아쉬워하는 그들에게 제가 그간 취재한 85호 크레인과 희망버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 분들은 사진에 대한 제 설명에 놀라움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산대교의 부끄러운 모습에 망쳤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그래도 부산대교에서 우리 일행을 막아서고 욕설을 퍼부은 사람들과 그 장면을 방관한 경찰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반성했다거나 불법적 행위에 응당한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을 일본분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거 같습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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