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부터 걸걸한 목소리의 중년 여성 한 분이 부산지하철 노조사무실을 헤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집회현장에서도 중장년 여성을 이끌고 있는 이 여성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는 2003년 설립된 부산지하철청소용역노조 조선자지부장이다.

"이봐라"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걸음이 멈춰졌다. 노조라면 거부감을 먼저 느낄 것 같은 50-60대의 여성들은 어떻게 노조를 구성하고 운영해나갈까? 이 노조원들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지부장은 어떤 분일까? 그를 보면 그런 궁금증들이 막 떠올라 잠시 지켜보게 되었다.

몇 달 전 우연히 마주친 그에게 전화번호 하나 따두는 '작업'(?)을 벌였다. 이 궁금증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지난 1월22일 그와 인터뷰를 잡을 수 있었다. 부산지하철 2호선 가야역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며 중장년 여성 노조원들을 이끌어 나가는 그의 얘기에서 한국의 진보정치가 귀담아 들을만한 내용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부산지하철 청소용역노조 사무실엔 조선자지부장과 사무국장 두 사람이 근무하고 있었다. 작년까지 조선자지부장 혼자 105군데의 용역사무실 등을 돌아다니면 현장활동을 했었다.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올해 단협에서 전임을 한 명 더 쟁취하게 되었고 사무국장님이 올해부터 전임으로 발령받아 근무중이셨다. 

노조소식지 붙이는데 벽에다 누가 물을 쫘악 들이다 붓더라구.



입사하기 전부터 노조 이런 데 관심이 있었습니까?.

조선자(이하 조) : 그 전에는 나도 이런 거 몰랐지. 여기 들어와서 알았지. 내가 2001년 3월에 입사했는데 그때도 노조하자는 말은 있었다 하데. 그런데 현장에서는 그럴 엄두도 못냈어. 진짜로 시작해보자 해가지고 된 게 2003년이었는데 그때 여성연맹에서 나서주고 부산지하철노조에서도 도와주면서 노조가 된 거지.

여성연맹에서 부산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3년이었다. 여성연맹은 2003년 2월 설 연휴에 17명의 조합원 가입을 이끌어냈고, 이 인원으로 부산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후 업체들과의 협상을 통해 노조활동 보장과 전임자 1명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업체와 단협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체결될 수 있었던 것은 최저임금법위반에 대한 진정서로 업체를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는 서울, 대구, 인천의 지하철청소용역 노조가 여성연맹 소속이다.

위원장엔 어떻게 나서시게 된 겁니까?

: 내가 초대위원장은 아니었어. 처음 노조가 설립된 게 2003년 2월이었는데 그 때 열 몇 명이 노조 가입하고 좌천역에 계신 한 분을 노조위원장으로 해서 신고했거든. 설립되고 첫 단협을 통해서 노조 전임직을 하나 땄는데 암만 해도 전임을 한다는 사람이 없어. 그래가 내한테 왔더라구. 3월 말 경엔가 노조 가입하고 2003년도 5월 10일부터 전임 노조위원장을 했지.

조선자지부장은 당시 노조활동을 하던 분들에게 추대되신 거였다. 그때 조선자지부장을 추천했던 현 사무국장은 조선자지부장을 추천의 이유로 똑똑함과 강한 리더쉽을 들었다. 사무국장의 말에 의하면 "현장에서 형님을 다 알아봤다"고 한다. 

처음 전임 위원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어떠셨습니까? 고충도 많았을텐데.

사무국장님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사무국장 :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초창기 땐 엄청 탄압받았어요. 그걸 옆에서 보고 탈퇴한 사람들도 많았죠. 노조 처음 가입한 17명도 다 탈퇴했을 정도니깐요. 저는 반장들하고 싸움도 많이 했어요. 제가 분임장인데 2003년 노조 결성해서 보니 분임장 39명 중 노조원이 저 한 명인거예요. 저한테 뭐 시켜줄테니 탈퇴하라고 회유도 들어오고 그랬죠.

: 초창기에 회사에는 공개 안하고 조합비는 보내주는 비공개 조합원들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계좌번호 추적한다 하잖아. 그래 내가 "느그가 수사원이가?" 하면서 싸움도 많이 했다. 같은 직원한테도 당하고 그랬다. 역 게시판에 노조소식지 붙이는데 벽에다 누가 물을 쫘악 들이다 붓더라구. 그래가 그때 사무국장하던 천**한테 빨리 매점 가서 1회용 카메라 사서 사진 찍으라고 했다. 그라니까 나중에는 "붙이도 됩니다" 그라더라구. 그런 거 많았지. 같은 직원한테 욕도 많이 듣고. 문도 안 열어주는 데 천지였다. 문 살짝 열었다가 우리가 보이면 그냥 가라 그란다아이가.

같은 동료직원들이 왜 그랬죠?

: 그 때 왜냐면 노동조합이 생기면 회사 무너진다 그렇게 교육했던 거야. 자기들 짤릴 거라고 겁먹은 거지. 짤리기 싫으니까 그렇게 한 거야.

최초 17명에서 시작하셨는데, 현재 조합원은 얼마나 늘었습니까?

: 3개 호선 모두 노조가입률 60% 씩 넘었다. 1호선은 가입률이 90%나 된다. 3호선도 함 싸우고 나니까 많이 늘었다.

부산지하철은 현재 3개 호선이 운행되고 있다. 각 호선 별로 용역 업체가 달라 노조의 활동여건도 호선 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때문에 각 호선별 단협을 맞추는 것이 노사협상의 주요 이슈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나 아는 분들은 노조 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걱정 안합니까?

: 남매 둘인데 둘 다 장가가고 시집 갔어. 그러다보니 내가 지금 활동이 좀 자유롭지. 내가 이 일 한다니까 우리 사위가 가입은 하고 나서고 그러지는 말라고 그라데. 지금은 아무 말 안해. 잘 모를거야 아마. 친구들은 내가 이거 한다니까 "야 느그 그래 인물이 없나?" 그러더라구. 그런데 이 일을 하니까 개인 생활이 없어진다. 인자는 그 친구들도 연락이 잘 안와. 집 직장 집 사무실 이거 뿐이다. 현장에 일나면 현장이 우선이고. 가정은 뭐 신경 쓸 게 없으니 자연 현장에 집중은 되는 기라.




노동자는 뭉치야 된다고 했는데 갈라지니까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 내가 지금 60이 넘었는데 사람들한테는 아직도 50이라고 뻥치고 댕긴다 아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지하철 간부 한 명이 내보고 47 아니냐고 하데. 그때가 54살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라면 앞으로 내가 47하께 그랬다 아이가.

나도 조선자지부장의 나이를 50대 정도로 봤다. 그에게서 넘쳐나는 에너지는 그를 60이상으로 넘겨짚기 힘들게 했다.

노동조합하고 나서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 처음에 들어와 보니까 수령액이 40만 오천원이었어. 심하게 쓰는 사람은 용돈밖에 더 되겠나? 지금은 노동조합 하는 바람에 그때보다 임금이 좋아졌지. 옛날보다 좋아졌다는 걸 아는 게 옛날에 임금 작을 때는 막 나가고 들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잘 안나간다. 우리가 정년도 보장해놨잖아. 만 63세 이상이거든. 정년을 높이노니까 나가는 사람이 없다아이가. 지금은 30대 후반도 많이 들어온다. 그라고 많이 받으면 겁난다는 사람도 있다 짤릴까봐.

조합원들에게 정치적인 변화는 없었습니까?

: 아줌마들도 인자 민노당 많이 찍는다. 그런데 작년에 민노당이 두 당으로 갈라지고 그래 되었다 아이가. 그라니까 우리가 이거 설명하기 참 곤란하데. 노동자는 뭉치야 된다고 했는데 갈라지니까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

저분들은 누구죠?

조선자지부장 뒤로 벽에 십수명의 명단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 운영위원 15명이다. 임기가 1년이라 올해 1월에 뽑아야 하는데 아직 못 뽑았다. 본부에 문의해보니까 미뤄도 된다고 하데. 그래서 2월에 선거할 계획이다.

운영위원들 모이시면 어떤 얘길 합니까?

: 주로 우리 현장 활동 한 거 얘기하고 조합원들 근무환경 불만 같은 거 듣지. 어떤 아줌마가 어디로 갔다는 등의 인사이동에 대한 얘기도 하고. 또 생활하면서 서로 싸운 것도 얘기한다.(웃음) 

가스통 들고 갑니다.” 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어 들고온나 라이타 준비해가 있으께.” 그랬지


아까 3호선에서 투쟁한 것 때문에 조합원이 늘었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투쟁 말씀하시는 거죠?

: 그게 2006년 11월이지. 부산에서 대단했다. 여성단체에서도 같이 나서고. 3호선 업체 회장이 밤마다 분임장들 불러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내일 출근해서 가야 된다 그라면 내일 니 나오지 마라 이라고. 이 여자들이 그때까지 노동조합이 안되서 천날만날 그라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공사에 항의하고 업체를 바꾸라고해서 업체가 바뀌었지. 우리는 당연히 새 업체가 고용을 승계한다고 봤는데 새로 온 업체가 사건 관련된 아줌마들 고용을 승계 안시키겠다는 거야. 이 업체를 서면에서 만났는데 이 사람들이 절대 안한다고 하더라고. 우리가 투쟁하겠다 그러니까 “아줌마 영화 실미도 봤어요? 가스통 들고 갑니다.” 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어 들고온나 라이타 준비해가 있으께.” 그랬지.

해고되고 나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 정말 17명이 해고가 다 되어버렸지. 회의하면서 내가 그랬어. 이거는 공사로비점거 아니면 답이 없다. 눈치 못 채도록 퇴근하는 조부터 몇 사람 씩 들어가자. 그래가 해고된 사람들 모두 공사로비 점거 들어간거야. 처음에 열 몇 명이었는데, 그 이튿날 40명, 다음날 백명 막 이렇게 불어났어. 거기서 열 하루 있었지.

점거하면서 어떤 투쟁을 했습니까?

: 우리가 페트병 계속 두드렸다아이가. 낮에 음악 틀어놓고 계속 두드렸지. 집에 딱 한번 옷만 갈아입고 거서 계속 묵고 자고 했잖아. 6월25일 들어가서 7월 5일날 나왔으니까 11일만에 타결되었다이가. 그때 부산지하철노조가 같이 집회하면서 많이 도와줬다.

생각나는 다른 투쟁 있습니까?

: 장산역에 조합원이 해고 될뻔해서 출근 투쟁했던 것도 있다. 그 조합원이 오전 6시까지 출근하는 조였거든. 내가 집이 화명동인데 그때 오전 4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장산으로 출근해서 그때부터 오후 2시까지 피켓 들고 서서 23일 동안 싸웠다. 지금 그 조합원 서면에 있다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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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조선자지부장의 "가스통 들고온나 라이타 준비해가 있으께"란 말이 머리 속에 계속 맴돌았다. 근래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후련한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입이 벌어졌을 용역업체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참아지지 않았다. 조선자지부장이 노동운동계의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와 땀이 묻은 이런 시어는 현장에서 몸으로 치열하게 투쟁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언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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