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막 지난 무렵,
양손 가득 포스터를 들고 노동조합을 찾아 온 노무현추모공연의 자원봉사자라는 두 사람은 부산지하철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부산지하철의 역사게시판에 23일 부산에서 열리는 추모콘서트 포스터 부착을 요청했습니다.
물론 포스터 부착 요청은 사전에 얘기가 오고간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역사게시판을 담당하는 실무자는 역사게시판에 부착할 수 없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역사게시판의 본래 용도가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의 노동운동에 관한 포스터를 부착하는 것입니다.
게시판에 여유가 있을 때는 사회진보단체와 그 공간을 나눠 사용하는데, 현재는 그럴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외부단체의 포스터를 부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시민단체들은 재정이 열악한 편이기 때문에 단체의 얘기를 돈 들여 선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역사게시판에 포스터나 의견광고를 부착하는 게 단체 홍보에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역사게시판에 자신들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단체들의 문의가 이어지지만, 사정상 부착할 수 없다는 답변에 그분들은 한숨과 아쉬움 속에 전화를 끊습니다. 그럴 때마다 진보운동을 함께 걸어가는 입장에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부산지하철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역사게시판은 전국 지하철에서 유일한 곳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인데, 사회의 작은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니 그 과정에서 선배 운동가들의 눈물과 땀방울이 얼마나 배였을지 상상이상입니다.

역사게시판은 진보운동단체들이 숨 쉬는 공간입니다. 노동조합은 단체의 포스터를 부착할 때마다 공평하게 나누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소중한 공간을 형평성을 잃고, 편견과 호불호에 따라 선택하면, 약을 독으로 쓰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사전에 얘기가 오고간 일’은 이렇습니다.

게시판 운영 실무까지 세세하게 챙기지 못한 노동조합 위원장은 노무현추모행사의 의미를 고려해서, 실무자와 상의하지 못한 채 행사 포스터의 게시판 부착을 약속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실무자는 그동안 포스터부착을 거절한 많은 단체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포스터 부착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 맞선 것입니다.
내부의 소통문제가 불거질 수 있지만, 게시판만 쳐다보고 있는 그 많은 진보단체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도 참 중요한 일이니까요.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역사게시판은 노동자와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공간이다.



이런 속사정까지 토하면, 부산지하철 노동조합 운영의 난맥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게 노동조합의 수평적 의사결정구조이고, 집행과정의 민주성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끄럽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진보는 적당한 대립과 의견충돌속에서 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때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실무담당자는 포스터 부착을 요청하러 온 노무현추모공연의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부착할 수 없다는 얘기를 전했고, 그 사람들은 계속 포스터 부착을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10여 분 이상 얘기가 오갔습니다.

실무자도 사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조직을 대표하는 분이 약속한 일을 거절하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앞선 말처럼 다른 사람, 단체와의 약속도 소중한 원칙입니다.
‘원칙’과 ‘약속’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중하고 자세하게 이유를 설명하면서 거절의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포스터 부착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다른 단체와의 형평성 때문이라는 것을 노무현추모공연의 관계자 중 한 명은 굳이 ‘정파’나 ‘정치노선’ 의 뉘앙스로 해석하는 몰이해를 하다,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앉은 자리 앞의 책상을 심하게 치면서 상황을 굉장히 불쾌하고 어지럽게 만든 것입니다.
그 사람의 불쾌한 행동과 거친 언행을 참지 못한 실무자는 폭발해 버렸고...
한동안 소란이 있었습니다.

다소 거친 말이 오갔고, 멱살잡이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말렸습니다.
그렇게 일련의 몸싸움 후, 그들은 사과하라는 요구에 ‘사과한다’는 말을 던지고 서둘러 조합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마무리하나 싶었는데...고소로 이어지고...

잠시 후, 근처 파출소에서 경찰 한 분이 나타나 앞선 소란을 시작한 그 사람이 실무자를 폭행혐의로 고소했다고 하면서 왔고, 실무자는 경찰과 함께 파출소로 갔습니다.

그 사이 노동조합에서는 위원장을 포함해서 몇 사람이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쪽과 관련있는 사람이 사과를 하면 어떻게 정리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들이 오갔지만, 실무자는 이미 경찰서 조사를 받고 조서를 적은 후 귀가했습니다.
현 상황에서 합의는 쉬운 일이 아니고,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무현 이름 달고 온 사람...MB같은 행동을...”


물의를 일으킨 노무현추모공연 주최측의 그 사람이 파출소에 달려가서 폭행죄로 고소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든 생각은 ‘비굴함’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서둘러 사과한다는 말을 내뱉고는 바로 파출소로 달려가는 모습,
사과는 왜 했는지...
앞에서 사과하고, 촛불이 약해지자 경찰 등 공권력을 동원해 잡아가고 ‘정신 차리라’고 공격하는  MB씨가 오버랩되었다면, 너무 과한가요?

경찰 검찰 등 공권력이 무차별 행패를 부리는 때입니다. 누구보다 노무현전대통령이나 그를 추모하는 분들이 진저리칠 것입니다. 그래서 노무현추모공연 주최측에서 온 사람이 서둘러 파출소부터 찾아간 것, 법적으로는 그럴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선듯 이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 때 하고 싶은 일이 그것뿐이었는지...

우리가 행한 거친 언행에 대해서는 사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것만 챙기려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자체 정화능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소수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느낀 분을 추모하며, ‘사람사는 세상’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분들 아닌가요?

그래서... 이렇게 무례하고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납득하지 않고 언어폭력에 자세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을...경찰에 맞고소할 순 없습니다.


폭력을 행사한 놈들이 뭐 잘났다고 이런 글을 적냐고, 비난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MB와 폭력경찰에 맞서 폭력행사 안 한 분들은 그런 얘기 하세요.
안티조선을 외치면서 활자폭력에 맞서 가만히 계신 분도 그런 얘기 하세요.

벌어지는 일이 생각과 다를 땐, 잠시 멈췄다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는 자제력과 융통성도 하나의 덕목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려운 일도 풀릴 수 있는 법인데...

덧붙이며...
'노빠'라는 말이 거슬려셨죠. '노빠'라는 말이 다소 속된 표현일 수 있습니다. 대다수 합리적인 분들과 대비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했다고 해명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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