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7일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 71명이 제주도에 모였습니다. 왜 모였을까요? 국제노동자교류센터 주최의 12회 한일노동자 등반 및 평화연수가 올해는 제주도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한일노동자등반대회는 1997년부터 시작해서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국제행사입니다. 이번 행사엔 한국노동자 54명과 일본노동자 17명이 참가하여 한라산을 등반하고 제주도의 4.3유적지를 평화연수했습니다. 여기에 부산지하철노조는 과반수에 육박하는 30명의 조합원이 참여했습니다.  




일본노동자들은 4월7일 첫날 한국 쪽이 마련한 저녁만찬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일본노동자들의 첫 인상은 일단 젊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40대 이상이 많았는데 일본의 노동자들은 30대 전후의 젊은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나이가 좀 더 어린 일본노동자들은 한국노동자에 배해 좀 더 밝은 옷차림과 쾌활한 몸짓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른쪽에 모여있는 게 한국노동자들이고 왼쪽이 일본노동자들입니다. 좀 느낌이 차이가 나죠.





만찬을 들기 전 식전 행사를 가졌습니다. 먼저 노동해방을 위해 애쓰다 돌아가신 노동열사에 대한 묵념. 이어서 양국 노동자단체대표의 교류사가 오가고 연대를 다지는 상징적 기념품들이 전달.





이날 만찬은 삼겹살바베큐였습니다. 삽겹살이 일본노동자 입맛에 맞을려나 살짝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습니다. 일본노동자들은 삼겹살을 상추나 깻잎에 싸먹는 것을 낯설어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된장도 발라 잘도 먹었습니다. 끝날 때 쯤 보니 두접시나 날라온 삽겹살들이 한 점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서먹할 것 같은 만남은 술이 한 두잔 들어가자 금새 웃음과 오바스런 몸짓이 오가며 시끌벅적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활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소통하는 것도 답답하기보다 재밌었습니다. 상대가 말을 알아들을 때면 흥이나서 박수와 웃음이 터졌습니다. 

사진 속에서 술을 따르고 있는 일본노동자는 나이가 25입니다. 어려서 그런지 아주 얌전했습니다. 묵을 먹어보라고 권했는데 젓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묵을 자꾸 흘렸습니다. 결국 묵이 여러차례 조각나 더 이상 잘라지지 않아서야 작은 조각을 입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묵덩어리 먹는 법을 보여주었더니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옆에 있는 친구는 아주 쾌활했습니다. 술을 주는 족족 바로바로 비워냈는데 건배하면 잔을 비워야한다는 한국의 음주문화를 어느 정도 학습하고 온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자리한 부산지하철 조합원 한 명이 이 일본노동자에게 술을 진탕 먹여볼까 하며 장난기를 발동하려는 데 그 순간 주최측에서 첫날 행사의 종료를 알렸습니다. 다음날 한라산 등산이 차질없게 할려는 조치였습니다. 한라산 등반 후 자리를 기약하고 일단 이날을 헤어졌습니다.




4월8일 아침 9시 드디어 이 행사의 메인인 등반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코스는 성판악에서 한라산정상입니다. 맨 앞에 한국노동자들 가고 일본노동자들은 중간에 대열을 이루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과 12회의 등반대회를 하면서 한국 측이 교훈을 얻은 게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대둔산에서 열린 10회 등반대회 때 비가오는 산 위에서 등반로를 못찾아 잠깐 헤메는 바람에 손님을 모셔놓고 큰 실례를 했다고 합니다. 일본이 산 곳곳에 안내요원을 배치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한 것에 비해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등반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등반대회는 사전준비도 하면서 철저히 준비 했습니다. 




 
드디어 등반을 시작한지 4시간 30분 만인 오후 1시 30분 경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들이 한라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일년에 60일만 보여준다는 백록담이 한일노동자들을 맞이하는 양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장면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본노동자들은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백록담의 장관에 모두 탄성을 질렀습니다. '스고이'란 감탄사를 한국말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일노동자들이 정상 여기저기서 백록담을 배경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대부분이 'JR동노조'인 일본노동자들과 부산지하철노조도 같이 단체사진을 한장.  




한라산 정상엔 일본노동자들 외에도 일본인들이 꽤 많았습니다. 우리 등반대보다 먼저 정상에 올랐던 일본노인들이 한국과 일본노동자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교류를 하는 모습이 쉽지않은 장면인데다 그중에서 노동자들이니 더 궁금했을 겁니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한·일노동자들은 용두암 인근의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날 저녁은 어제처럼 중간에 끊기는 감질맛나는 만남이 아닌 제대로된 화합의 자리였습니다.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과 또 이틀간의 만남으로 서로 얼굴을 익힌 한일 노동자는 한바탕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보다는 좀 더 젊은 일본의 노동자들이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사진 속에서 이 일본노동자는 고추가 맵다며 입에 물고 익살을 부리고있습니다. 



흥이 오른 일본노동자들이 단체로 일어서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처음 부른 것은 한국의 철의노동자였습니다. 노래 뿐 아니었습니다. 일본노동자들은 철의노동자 안무까지 준비했습니다. 일본노동자의 힘찬 노래에 흥은 더 고조되었고 그뒤부터 한국노동자와 일본노동자가 번갈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자리를 마칠 때 흥이 가시지 않은 표정의 일본노동자 몇몇은 숙소에서 먹기위해 한국소주를 챙겨나가기도 했습니다. 





다음날(4월 9일) 한국과 일본노동자들은 4.3유적지를 함께 돌아봤습니다. 그동안은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들뜬 시간이었다면 이날은 머리와 가슴을 채우는 진지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곳은 무명천 할머니 댁입니다. 무명천할머니는 토벌대의 총탄에 턱이 다 날라가서 평생 턱에 무명천을 싸고 살다 지난 2004년 돌아가셨습니다. 





학살된 양민들의 시신을 구분할 수 없어 시신의 숫자만큼만 구분해 함께 묘를 조성하여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 이름 붙여진 묘역도 참배했습니다.





일제시대 말기 제주도에서 수만명의 일본군이 미군과 옥쇄를 각오한 마지막 결전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엔 비행기격납고와 고사포 등의 일본군유적지가 많습니다. 일본노동자들은 4.3유적 뿐 아니라 일본제국주의가 이 땅에 남긴 상처도 보았습니다.




제주도 밭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일제시대 군사유적을 찾아가기위해 한국과 일본 노동자들이 밭 사이에 난 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역시 기록에 꼼꼼한 일본인의 습관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유적지 앞에서 설명이 있을 때마다 일본노동자들은 수첩을 꺼내 그 내용들을 받아적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본노동자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한 곳은 4.3평화공원이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원들은 여기서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부산행 비행기를 타야했습니다. 여기서 잘별인사를 나누고 부산지하철노동자들은 공항으로 가고 다음날 돌아갈 예정인 일본노동자들은 다른 유적지로 향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나면 한가지 궁금증이 떠오를 겁니다. 왜 한국노동자가 일본노동자와 연대를 해야하는가? 

자본은 전세계적으로 움직입니다. 반면 노동은 국가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본은 전세계에 있는 공장을 이용해 노동자를 압박하고 무력화 시킵니다. 한국에서 파업하면 중국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노동자만 단결해선 자본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다국적기업의 전세계 공장이 한꺼번에 파업이나 협상을 했다는 일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노동자는 그저 기업이 주면 주는대로 받아야할 처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이 연대해야할 이유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대해야할까요? 연대해야한다는 건 알지만 연대의 방법은 참 어렵습니다. 특히 민족감정이 안좋은 일본과의 연대는 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일노동자 등반대회 마지막날 일본 쪽 통역을 담당한 JR동노조의 오다라는 일본여성과 인터뷰 했습니다. 오다씨는 이 인터뷰에서 매년 11월 한국노동자대회에 오는 일본노동자들이 오기 전에 전태일의 책을 보고 온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얘기에 연대의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연대를 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공통의 히어로를 가지는 것입니다. 전태일의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노동자가 만나는 자리가 좀 더 크게 지속적으로 마련된다면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연대는 강하고 깊어질 것입니다. 물론 일본 쪽에도 그에 걸맞는 히어로를 찾아서 한국노동자에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오다씨의 자세한 인터뷰는 다음에 얘기해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훈훈한 득템 이야기. 볼펜과 타월, 한라산 등반지도가 그려진 수건을 하나 씩 받았습니다. 술은 방에 하나씩 받아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일본 쪽에서 좋은 술을 고른 거 같더군요. 향이 끝내줬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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