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4일 진보신당 사무실에서 노회찬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매달 노보를 발간하는데 4월 인물 인터뷰는 노회찬대표였습니다. 단일화 등으로 너무나 바쁜 노회찬대표와 약속이 몇번이나 어긋나다 14일 서울에서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노회찬대표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가 노대표의 반독재투쟁이었습니다. 노회찬대표의 반독재투쟁은을 놀랍게도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노회찬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부산고등학교를 지망했는데 당시에 한 반에서 부산중에서 60명 중 45명이 딱 순서대로 갔어요. 제가 반에서 1, 2 등 했는데 부산고에 떨어졌어요. 저 정도의 성적을 가진 사람이 떨어질리 없으니 그게 사건이 된 거죠...(중략) 그 다음해 학원에서 고입재수를 했는데 항상 전체 1등을 하니까 학원비를 한번도 안냈어요. 공부에 부담이 없었어요. 그때 시국도 그렇고해서 데모하는 대학생들 보는 책을 많이 봤어요."

정리하면 이런 말입니다. 당시 최고라는 경기고에 충분히 갈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노대표가 정말 황당하게도 고입에서 낙방한 것입니다. 그러니 고입재수하는 시간이 노대표에겐 정말 여유로운 시간이었던 겁니다. 고입학원에서 노회찬대표는 교과서가 아닌 대학생들 보는 사회과학 책을 읽으며 스스로 의식화(?) 했습니다. 그 다음해 입시에서 노회찬대표는 어렵지않게 경기고에 입학합니다. 학원에서 이미 대학생들 보는 책을 독파한 노회찬대표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고등)학생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반에서 1, 2등이 떨어진 개인적인 당시 사정에 대해서 노대표는 감기약으로 얘기합니다. 감기약을 먹었는데 정말 몽롱해서 아무 생각이 안나더라고 하더군요.

"제가 제일 먼저 써클 만들었죠. 창비 보고, 백기완 강연 다니고, 함석헌 찾아다니고. 그러다보니 의기투합한 친구들 있었죠. 그 중에 한 명과 유신 1주년 때 박정희 타도 유인물 도 살포했죠. 그때는 광주일고, 신일고, 용산고 등 몇 개의 고등학교에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고등학생들이 좀 있었어요."




이렇게 70년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에게 4월에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4.19묘역 참배. 그런데 노회찬대표는 4.19묘역을 4월19일이 아닌 4월 18일에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4.19도 (고등학교)1학년 때부터 참배했어요. 그 당시 19일 가면 보기 싫은 김종필 같은 정치인 보니까 그거 보기싫다고 우리는 18일 갔죠. 참배하고 끝나면 막걸리 한 잔 마시고. 학교 끝나면 교실문 걸어 잠그고 민청학련 유인물 낭독하고. 그때는 우릴 지도하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끼리 모여서 했죠. 그래서 그때 그렇게 같이하던 친구 중 6명이 국가보안법으로 나중엔 감옥에 갔다왔어요."

73년 4월18일 보기 싫은 정치인들을 피해 묘역을 찾은 고등학교 1학년 노회찬과 그 친구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 대여섯명이 고요한 묘역에서 앞선 자의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참배가 끝난 후 시대에 대한 울분을 쏟아내며 막걸리를 나누는 모습은 완전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오늘 진보신당의 노회찬대표도 4.19참배를 했을 겁니다. 참배하면서 36년 전 그때 그 묘역 앞에 섰던 자신과 친구들 모습이 스쳤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땔 추억하며 오후엔 막걸리도 한잔 걸칠지도. 혹시 노회찬대표 지금도 4월18일 참배하는 건 아닐까요? 그걸 함 물어볼 걸 그랬네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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