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20년 전 6월 세상을 뒤흔든 파업이 있었다. 부산지하철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 그리고 전국기관차협의회 3개 노조원 2만여명이 함께 한 사상 초유의 파업이었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파업은 94년 6월 23일 오전 04:00에 시작되었다. 이날 새벽 경찰이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 농성장에 침입해 차별적이고 기습적인 연행을 실시하자 전기협은 파업 예정일을 4일 앞당겨 철도 총파업 선언했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곧이어 서울지하철노조가 6월 24일 04:00, 부산지하철노조가 6월 25일 04:00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인 전지협(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공동파업이 이루어졌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파업의 시작은 3월 16일이었다. 그날 전지협 창립대회 및 출범식이 있었다. 6월 8일엔 공동쟁의 발생신고를 했다. 6월 16일 3개 노동조합의 파업찬반투표 결과 서울 90.7%, 부산 96.2%, 전기협 90.4%로 파업은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전지협 파업이 있었던 94년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전환기였다. 한국노총과 경총의 임금합의에 대한 반발로 한국노총 맹비 납부 거부 및 탈퇴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주요 대기업 노조를 포함한 37개 노조가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135개 노조가 맹비 납부를 거부했다. 전지협 파업은 바로 이런 시기를 관통한 파업이었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부산지하철노조도 이때 한국노총을 탈퇴했다.  93년 10월 13일 전임 집행부의 퇴진으로 실시된 총선거에서 민주후보인 강한규 후보가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고 7개 지부 중에 6개 지부에 민주집행부가 들어섰다. 94년 그 즈음 부산지하철노동조합도 역사적인 전환기였던 것이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파업에 돌입한 전지협 조합원들은 각 대학에서 농성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엔 대화의지가 없었다. 26일 김영삼 정권은 전국의 파업농성장 침탈하여 400여명을 연행한다. 대학에서 농성 중이던 전지협 조합원들은 다른 대학으로 이동 및 산개했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기념토론회(6월 1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주최)



전지협 파업 농성장을 침탈하자 다른 노조로 파업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6월 27일 한진중공업, 28일 대우기전 등 20개 노조가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이들 파업도 수백명을 연행하면서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위원장배 체육대회(6월 초)



파업을 탄압한 건 정부만이 아니었다. 언론도 파업대오를 무너뜨리기 위해 집중포화를 쏟았다. 강경대응, 엄정처벌의 기사를 지면에 도배되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공공연한 협박이 가해졌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위원장배 체육대회(6월 초)



6월 27일 조계사로 옮긴 전지협 지도부는 재파업을 선언한다. 그러나 농성장 침탈로 복귀한 조합원들을 다시 모으기는 힘들었다. 결국 조합원들 대부분이 정권의 탄압으로 현장에 복귀한 가운데 지도부는 6월 30일 조합원들의 현장복귀를 선언한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위원장배 체육대회(6월 초)



7월 1일 서울지하철과 전기협 조합원들이 현장복귀를 하고 지도부는 장기농성에 돌입한다. 7월 2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강한규 위원장 등 간부들이 경찰에 연행된다. 8월 30일엔 조계사 지도부에 공권력이 침탈하고 9월 12일 서울지하철 지도부가 농성을 정리한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위원장배 체육대회(6월 초)



전지협 파업의 결과는 참혹했다. 구속자 30명, 고발자 188명, 직위해제 734명, 파면 54명, 정직 48명, 감봉 262명, 부당전출 140여명 등이 발생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위원장배 체육대회(6월 초)



이에 우리는 지금의 시점을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대한 전환기로 규정하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산별노조 건설과 민주노총 건설에 실천적으로 앞장서기 위하여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전지협)의 출범을 선언한다. (전지협 창립선언문)



조합원 걷기대회(6월 14일)



따라서 우리 전지협 노동자들은 이제까지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강화하기 위해 바쳐야 했던 노력과 희생의 몇 배가 요구된다 하더라도 교통운수노동자들의 염원인 민주산별노조와 천만노동자의 희망인 민주노총을 건설하기 위하여 힘차게 전지협의 깃발을 세우는 것이다. (전지협 창립선언문)



조합원 걷기대회(6월 14일)



결과적으로 보면 전지협 파업은 실패한 파업이다. 그러나 전지협 창립선언문을 읽어보면 이 파업이 단순한 결과만으로 평가해선 안되는 파업이라는 걸 알 수 있다.전지협 파업은 노동운동의 디딤돌이었다. 전노협이 민주노총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동파업을 한 것은 역사적인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조합원 걷기대회(6월 14일)




공동파업은 제조업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의 범위를 공공부분까지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1994년 전지협 공동파업이 없었다면 오늘날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노동 3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시키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기계적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 문영만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지부장)




전지협 파업 20주년 문화제



20년만인 2014년 6월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전지협 파업 20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조합원 체육대회와  걷기대회, 토론회를 열었고 마지막 날엔 모두 한마당에 모여 축하하는 문화제도 개최했다. 전지협 공동파업 20주년 행사엔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함께 참여했고 전국 궤도동지들과 일본의 궤도동지들도 초청되었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문화제



우리는 오늘 전지협 공동파업20주년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런 점에서 전지협 공동파업은 실패한 파업이 아니다. 역사에서 성공한 파업이다



전지협 파업 20주년 문화제



20년 전 전지협은 20년을 꿰뚫는 파업을 실행했다. 그것은 그 시점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역사적으로 어떤 사명과 역할이 있는지를 간파하고 실행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20년 뒤 기억하고 기념될만한 파업을 조직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전지협 공동파업 20주년을 치른 후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고민이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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