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님께서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뭐라고 소개해야 되나?' 그래서 제가 20대 총선에 나갔다가 떨어진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기 힘드셨나 봅니다. 19대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더민주당 배재정 의원이 난감해하며 자기소개를 한 자리는 부산의 공기업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부산공공노조협의회(이하 부공노협)의 집회장이다. 부공노협은 전국 최초로 지역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하는 단체다. 이날 집회장인 부산시청 광장엔 부공노협 소속 노동자 2천5백명이 모였다. 규모로 보나 의미로 보나 대단한 집회라고 할 수 있는데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19대 배재정 의원에겐 참석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정의당의 이정미 당선자가 참석한 것도 배재정 의원의 이런 부담을 더 가중시켰을 것 같다.




부공노협은 이번 집회를 준비하면서 적어도 1명 이상의 지역 야당 당선자가 참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최초로 지역에서 결합했다는 의미와 2만에 육박하는 단체의 규모를 부산의 야당 당선자들이 무시하기 힘들 거라고 본 것이다. 5명이나 되는 지역 야당 당선자 중 누군가는 참석해 두 노총 노동자들의 결합을 축하하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임기가 끝나가는 배재정 의원이 참석하면서 어색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정무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의 가장 큰 노동자들의 모임을 들여다보지 않은 그들이 그보다 작은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선거혁명이 일어났지만 제1 야당의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다. 선거 때면 새누리당에 대한 공포마케팅으로 표를 몰아달라며 진보정당에게서 노동자의 표를 뺐어가면서 그 노동자들이 모여 있으면 결코 가까이 오지 않는 게 바로 제1야당 더민주당이다. 노동자의 표를 얻고도 그 표에 대한 책임은 전혀 느끼지 않는 그들에게 노동자는 아주 손쉬운 선거 먹잇감일 뿐이다. 


5월 16일이면 선거가 끝난지 한 달 지난 시기다. 아직도 당선인사를 하고 다니는 당선자들도 있다. 이 날 부공노협은 지난해 출범 후 최초의 결의대회를 가졌고 집회에 올 수 있는 조합원은 대부분 참석했다. 세대로 보나 정체성으로 보나 야당에 표를 줄 가능성이 아주 높은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러니 그 자리는 한 명 한 명 찾아다닐 수고를 덜면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부산의 야당 당선자들은 이런 효과적인 자리를 피했다. 노동자에겐 당선인사도 하기 싫다는 걸까?


여당은 패배했지만 노동자들은 이기지 못했다. 지역의 1만7천 노동자 단체가 국회의원 당선자 한 명에게 목소리 전하기도 힘든 현실로 볼 때 노동자는 이번에도 패배했다. 벌써부터 새누리당이 하던 소리를 더민주당이 떠들고 있다. 자본이 더민주당으로 파트너를 바꾸어 승리한 것이다. 


표를 몰아주고도 외면당하다 선거가 오면 다시 새누리공포 마케팅에 넘어가 표를 몰아주는 그런 패배를 노동자들은 계속 반복할 것인가? 다행인 게 이번 총선은 그런 반복을 탈피할 조짐을 보여주었다. 여당이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고 야권에서 분화된 제3당이 성공했다. 이렇게해서 생긴 정치 공간에서 유권자들은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선택지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제1야당의 새누리 공포 마케팅이 이제 마냥 통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앞으로 선거에거 당장 이기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제 똑같은 패배는 당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패배와 노동자의 패배를 분리해야 한다는 각성의 단계는 온 것 같다. 표를 받고도 인사도 꺼리는 정치인을 보수정당에 대한 두려움으로 선택하는 일은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부산지역 공공기관 노동자들 "노예연봉제·퇴출제 폐기하라">

http://m.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140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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