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말 부산에서는 3호선 2단계 반송선이 개통합니다. 부산교통공사는 내년에 개통하는 반송선에 대해 무인화된 시스템이라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역무원이 없고 전철에도 기관사가 없이 운영된다는 말입니다. 수백명이 탄 전철이 기관사 없이 달리고 역무원 없는 역을 승객들이 내리고 탄다? 과연 그렇게 지하철을 운영해도 될까요? 이런 질문에 부산교통공사는 반송선은 일본의 무인경전철 유리카모메를 모델로 했다는 식의 얘기를 합니다. 일본에서도 무인전철을 운영하고 있으니 우리도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5월31일 오전 8시 부산지하철노조의 일본경전철 취재팀이 부산발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부산교통공사에서 모델로 삼았다는 일본의 경전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여장을 풀 새도 없이 곧장 '유리카모메'의 출발지인 신바시역으로 갔습니다. 그 때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이틀 동안 유리카모메와 또 다른 경전철 노선인 닛포리토네리를 타고 또 탔습니다.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에 타고 한낮의 관광객과들도 함께 타보았습니다. 역마다 내려서 승하차 환경을 점검했습니다. 나중엔 '유리카'란 말만 들어도 멀미가 나올 것 같았습니다.




유리카모메는 관광노선, 반송은 일반노선

우리가 본 이틀 동안 유리카모메는 별 문제 없이 달렸습니다.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한국의 반송에도 무인경전철을 도입해도 되는 걸까요?  그건 아니죠. 차만 잘 굴러간다고 정리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럴거면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동영상이나 보고 말았겠죠. 유리카모메 시스템의 안정성과 사고 시 대응시스템 등을 살펴봐야 하고 반송선이 만약 무인화 된다면 승객들이 어떤 불편함을 겪을지도 예상해봐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과연 유리카모메가 한국의 반송선에 그대로 대입 가능한 시스템인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유리카모메를 시승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유리카모메와 반송선이 다니는 두 지역의 차이였습니다. 유리카모메 노선이 지나가는 지역은 우리나라의 코엑스 같은 전시센터와 위락시설들이 들어선 임해부도심입니다. 인터뷰한 유리카모메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 지역이 애초 거대한 전시관을 목표로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개발 중이라 전철이 지나는 도시 한가운데에 풀만 키우는 수만평의 미개발지도 많이 보였습니다. 유리카모메는 도쿄의 주요 교통망이 아닌 특수 지역의 교통로 역할을 하는 노선이었습니다. 


왼쪽은 평일, 오른쪽은 주말 시간표



유리카모메의 배차간격을 보면 유리카모메 노선의 존재 이유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후지tv 등 주요 업무빌딩과 전시관 등에 출퇴근 하는 7-9시 시간대에 배차간격이 촘촘해집니다. 그러다 낮에는 배차간격이 조금 길어집니다. 그러나 큰 차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도 관광객들과 학생들이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주말 이용객을 보면 유리카모메의 노선이 어떤 용도인지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말 낮시간대의 배차간격이 평일 러쉬아워와 비슷합니다. 이 배차간격에서 유리카모메가 관광 등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 노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반송선은 관광지도 아니고 개발지도 아닙니다. 반송선은 이미 수십만명의 사람들 살고있는 주거지를 통과합니다. 반송과 도심을 연결하는 반송선은 특수 목적의 노선이 아닌 두 지역간의 교통을 위한 일반적 노선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관광노선을 목적으로 건설된 유리카모메의 무인운영시스템을 주거지역에 건설되는 한국의 반송선에 그대로 도입할 수 있을까요?


유리카모메 홍보책자 중에서. 노선이 임해부도심을 둘러서 나중엔 시작점과 끝점이 아주 가까워지는 걸 볼 수 있다.



교통환경 급변 압력에 그대로 노출되는 반송선

유리카모메와 반송선의 지역적 차이는 운송환경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유리카모메의 경우 교통 폭주 등의 상황에 따라 이용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근 지역에 접근할 주요 교통망들이 겹쳐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굳이 유리카모메를 이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송선은 다릅니다. 반송선은 반송과 도심 사이의 유일한 전철노선입니다. 그리고 승객들은 주로 출퇴근과 공적·사적 업무 등의 긴요한 일을 위해서 반송선을 이용합니다. 반송선은 고정적이고 달리 선택의 길이 없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노선입니다.    

여기서 반송선 무인운영 문제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송선이 일반노선이라는 것은 반송선이 유리카모메와 달리 주변 교통환경의 급변에 따른 압력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말입니다. 반송의 도로에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경우 인근의 시민들은 반송선으로 몰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갑작스럽게 몰린 승객들로 역사는 가득 차고 전철은 사람을 밀고 탈 정도가 될 겁니다. 역무원도 없는 역사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몸을 밀치고 승하차하고 문도 잘 안닫힐 만큼 빽빽하게 승객을 태운 전철이 기관사도 없이 달린다 생각해보십시오. 몸서리 쳐지지 않으십니까? 이런 무인만원 전철을 타는 게 일주일에 몇번 있을까요? 한번? 두번? 출퇴근 러쉬아워에다 인근 지역 큰 행사가 있으면 하루에도 몇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기관사도 없는 무인만원전철에 몸을 내맡기면서 사고만 안나기를 기도하고 갈까요? 


벡스코에 전시된 반송선



고장난 전철에서 승무원도 역무원도 아닌 사령과 통화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다시 말하면 관광노선의 유리카모메는 적정 승객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일반노선의 반송선의 경우엔 주변 교통환경의 압력을 받아줄 유일한 전철노선이기 때문에 적정승객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만약 반송선이 일반전철처럼 기관사가 있고 역사에 역무원이 있다면 적정승객의 유지 여부는 별 고민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적정승객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반송선이 무인운영되기 때문입니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손님으로 문도 안닫히는 정원을 초과한 전철을 수km 떨어진 사령에서 모니터에만 의존해 문을 여닫고 기관사도 없이 손님만 태운 채 운행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런 전철을 타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차내의 기관사나 인근 역의 역무원이 아닌 스피커폰을 통해 한참 떨어진 사령과 통화하는 승객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얼마나 클까요? 마치 고장난 비행기를 타고있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심바시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머지 역에선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다



유리카모메의 승하차인원이 일부 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반송선과의 중요한 차이입니다. 출퇴근시간의 경우 유리카모메는 첫번째 역인 심바시역에서 대부분의 승객이 타서 나머지 역에 뿌려지는 식입니다. 신바시역 외의 다른 역에선 승차자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심바시역에서 환승을 한 승객들이 전시관들과 업무빌딩이 몰려있는 임해부도심에 유리카모메를 이용해 출근하기 때문입니다. 유리카모메는 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공항철도처럼 심바시역에서 임해부도심으로 승객을 수송하는 승객동선이 단순한 일방적 노선입니다. 유리카모메가 2개의 유인역만을 운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공항철도같은 일방적 노선의 경우에 무인운영이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6만의 주거지가 빽빽한 반송지역. 노란색 도로를 따라 반송선이 지나간다. 반송선 근처엔 이런 주거지가 이어진다.



예측가능성과 대응가능성을 고려해야

그러나 반송선은 유리카모메의 승하차환경과 완전히 다릅니다. 반송선은 6만명이 사는 반송과 그외에 또 수만명의 주민이 주거하는 역들을 지나갑니다. 반송선은 유리카모메와 반대입니다. 반송의 승객을 나머지 역에 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노선 인근의 주거지에서 최종역인 동래역에 승객을 쏟아넣는 식입니다. 동래역에 갈 때까지 승객은 계속 늘어나게 되는데 부산지하철공사는 이러한 반송선을 유리카모메의 무인역만 보고 무인역사를 운영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무인경전철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은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무인운영을 장담합니다. 그러나 기업의 장담만 믿고 무인전철을 도입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태운 탈 것에 승무원이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겠다고 한다면 무인과 유인을 판단하는 우리 사회의 근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기술적인 해결에만 의존해선 안됩니다. 무인운영은 예측가능성과 대응가능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는 한도 내에서 판단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전철이 무거우면 예측가능성과 대응가능성은 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중전철 무인운영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경전철의 경우에도 열차량이 일정량을 넘어가면 무인운영을 제한해야 합니다. 차량이 늘어난다면 이름만 경전철이지 실제로는 중전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탑승객의 수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승객이 많아지면 여러가지 돌발행동의 확률이 높아지고 혼잡도로 인해 사고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이런 전철을 수km 떨어진 사령에서 조종한다면 예측가능성과 대응가능성은 당연히 떨어지게 됩니다. 수백명이 타고 있는 전철이 승무원도 없이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좀 괴기스럽습니다.

반송선은 부산광역교통망체계의 한 노선입니다. 일본의 유리카모메처럼 특수목적으로 건설된 노선이 아니라 긴히 필요하여 만든 주요 노선입니다. 반송선은 6량을 편성할 예정이고 정원은 500명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부산시와 부산교통공사는 경전철이라하기엔 꽤 무겁고, 유리카모메 정원 300명보다 200명이 더 많은 정원이 500명이 넘는 전철을 부산광역시의 주요 노선인 반송선에 무인으로 운행하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반송선은 14개 역 중 9개 역이 지하에 있습니다. 대구지하철사고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하에서의 사고는 엄청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기관사도 역무원도 없는 반송선 지하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어떤가요? 이런 걸 보고 무늬만 경전철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 부산지하철노조는 부산교통공사의 반송선 무인화 시도를 사측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도 반송선 인력은 필요합니다.

Posted by 커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