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부산교통공사가 내년 12월 개통할 부산지하철 신규노선  반송선을 무인시스템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반송선 무인운영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여기에 장애인과 대학생들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부산지하철 조합원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뚜렷합니다.
무인시스템으로 일자리가 줄고, 노동조건이 불안해지고, 구조조정이 닥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하철에서 직접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지하철 무인시스템은 도저히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장애인과 대학생들은 무슨 생각으로 무인시스템을 반대하는 지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지난 6월13일(토) 오후에 장애인 3명과 대학생 2명이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들은 최근 부산지하철노동조합에서 개최한 무인시스템 반대 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장애인과 대학생들로부터 무인지하철에 대한 생각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장애인 참석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중설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병변 장애인입니다

이중설씨는 직원들이 있을 때도 불편하고 불안한데, 직원이 없는 지하철은 어떨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얼마전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지하철역에서 두 시간을 머문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직원이 옆에 있으니 어떻게 해결했지만, 아무도 없는 지하철에서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뇌병변 장애인인 김은정씨는 불편하지만 두 다리로 걷습니다

 

 


김은정씨는
손이 많이 떨려서 자동기계에 신분증을 직접 대고 우대권을 뽑는 과정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매표소에서 역무원이 직접 나눠 줄 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송선에는 아예 아무도 없으니, 더 힘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라리 서울처럼 카드를 지급해서, 우대권을 뽑지 않고 편하게 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처럼 카드를 지급하면, 역무원도 더 줄어들고 지급받지 못한 장애인은 더 불편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하자, 수긍했습니다.



△이정민씨는 뇌병변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자주 사고를 겪는다고 합니다








이정민씨
"직원을 뽑지 않고 기계로만 하겠다는데, 그렇게 기계로만 하는 비용이 적은 것도 아니고, 사람이 다쳐서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들 수 있다"며, 눈 앞의 이익만 바라보는 세상에 큰 한숨을 지었습니다.
정민씨는 1년에 열 번도 넘게 지하철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겪고 있다며, "지하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기를 바랬는데, 자꾸 줄어들기만 한다"면서 사람을 더 늘이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애인들이 한바탕 이야기 한 후, 대학생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박영호씨는
지방 국립대학의 졸업반입니다. 취업 때문에 1년을 휴학했는데도 막막함이 덜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007년 부산지하철에서 마지막으로 직원을 뽑았을 때 당시 졸업반 선배들이 많이 시험을 쳤는데, 그때 떨어졌거나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반송선 개통으로 생길 신규채용 공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부산교통공사가 신규채용을 꼭 하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졸업반인 박영호씨는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박준희씨는 미국 교환학생 시절 한국의 지하철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박준희씨는 아직 3학년으로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좀 덜한 듯, 교환학생 시절 경험으로 무인시스템에 대한 걱정을 했습니다.
 “외국 사례를 가지고 무인시스템을 한다고 하는데, 왜 외국의 나쁜 사례만 가져오는 지 모르겠다”며,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을 때 지저분하고 슬럼화된 미국의 지하철을 보면서 깨끗하고 친절한 부산지하철을 많이 떠올렸다고 합니다.
“무인시스템으로 부산지하철도 그렇게 지저분하고 슬럼화 되면 어쩌냐”면서, 무인시스템을 하려는 사람들은 나쁜 점만 따라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반송선 무인시스템으로 시작한 대화는 가지를 치면서 다양하게 넓혀졌습니다.
 

대학생들이 털어 놓는 취업에 대한 푸념에 대해 장애인들은 다른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장애인들은 부산지하철과 같은 좋은 직장에 일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정민씨는 지하철에서 아직 중증장애인이 취업한 사례가 없다며, “중증장애인이 지하철에서 근무하면 직원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시각이 변할 수 있다”, 중증 장애인들도 부산지하철에 입사할 수 있도록 사회환경이 달라져야 정말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준희씨는 최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제가 다니느 학교에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 건물 주변 인도에다 삐죽삐죽 돌을 박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보기 좋게 하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장애인들은 다니기 불편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비장애인 학생이 그 길에서 넘어져 다쳤고, 그 후 돌을 없앴습니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든 사람이 편하다’. 장애인이 불편한 곳은 모든 사람에게 불편하다. 딱 이런 사례가 아닐까요."


무인시스템으로 장애인이 힘들어지고, 520개의 좋은 일자리가 날아가 버린다는 반송선의 문제점, 장애인과 대학생은 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커피전문점에서 시작한 대화는 2시간이 흘러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이야기가 나오자, 그동안 쌓여 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술술 풀었습니다.
그들이 겪었던 사고부터 지하철안에서 자신들을 향한 사람들의 숙덕거림까지...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중설씨는 지하철을 타면 반드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버릇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 보니, "제가 지하철에 타면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말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언젠가 제 앞에 앉아 있던 어느 할아버지가 했던 말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요. 그 할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이 다 들을수 있는 큰 목소리로 저를 향해 이랬어요. '저런 몸도 불편한 사람들이 왜 밖을 돌아다니고 그래. 저런 사람들은 사회에 도움도 안되는데 그냥 집에나 처박혀 있지' 저는 사람들의 이런 말이 듣기 싫어 일부러 음악을 틀어 놓고 귀에 이어폰을 꽂아요"

대화는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로 옮겨 계속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은 술자리에 얽힌 이야기도 많습니다


장애인들은 술자리에서도 차별받는다?



여러분이 술집에 들어섰을 때, 장애인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시고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하세요? 그냥 그렇구나 하는 분이 대부분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참석한 한 장애인의 말을 들어보세요.

"장애인들이 술을 마시면, 장애인들이 술을 마신다고 야단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몸도 불편한 사람들이 무슨 술을 마시고 다니냐고요..."
"담배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들이 담배 피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요.  장애인들이 담배 피면 몸도 안 좋은 사람들이 무슨 담배를 피냐고 합니다. 담배가 몸에 안 좋다고 금연하라는 시각과는 좀 다른 뉘앙스가 있지요"

△손이 불편한 정민씨는 술자리에서 친구가 건네주는 술을 마십니다


정민씨에게 건배를 제의하자, 술 잔을 옆에 있는 중설씨가 들더군요. 정민씨와 건배하는 것이라고 해도, 중설씨가 계속 들고 있길래, 그냥 그렇게 건배를 하고, 저는 마셨는데, 중설씨의 잔은사진처럼 정민씨에게로 향했답니다.


서로 불편한 것을 보완해주고, 같은 자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많은 분들은, 위의 사진을 잘 생각해 보세요. 세상이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없이 이렇게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부산지하철노동조합에서 반송선 무인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장애인과 학생들과 자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2명의 학생들은 들러리처럼 되고, 장애인 3분의 이야기만 잔뜩 들었습니다. 학생들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것 같았는데...
장애인들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세상은 그럴 기회를 잘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게 결론을 짓고자 한 게 아니었으니, 이런 게 아쉬움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 만난 세 명의 장애인들은 현재 '부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속한 장애인 활동가들입니다.
같은 학교 동창의 인연으로 만나 지금까지 함께 일을 하고 있답니다.
이들은 곧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세 명이 뜻을 모아 작은 사무실을 열어,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활동을 모색할 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분께 알려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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