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6일 오전 9시부터 부산지하철노조 전조합원이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부산시청광장에서 파업출정식이 있었습니다. 파업출정식은 파업의 정당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조합원의 파업결의를 다지는 자리입니다. 그간 노조는 이 중요한 자리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몇가지 아이디어를 놓고 파업직전까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헌혈이었습니다. 파업출정식과 함께 노조원들이 현장에서 헌혈을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노조원 2000 여 명 중 30% 정도는 헌혈을 하지않을까 하는 예상도 있었습니다. 행사를 추진해보기로 하고 헌혈하는 곳에 연락을 했습니다. 노조의 설명을 들은 그쪽에서 잠시 의논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 연락이 왔습니다. 제의는 감사하지만 힘들겠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좀 황당했습니다. 길에서 방송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헌혈을 호소합니다. 시민들의 팔을 붙잡고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항상 절박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수백명의 자발적 헌혈을 받지않겠다고 하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겠다는 피를 못받는 이유가 뭘까요? 일정상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운용할 헌혈차 한 두대 정도는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대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결국 파업이기 때문에 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파업현장에서 피를 헌혈받기는 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의료에서 피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 때 수혈받지 못해 소중한 생명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조가 연락한 곳은 생명과 직결되는 이 피를 행사를 가려가며 받으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파업이라 곤란하다는 겁니다. 파업노동자의 피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파업을 하는 순간 피에 불순물이 생기는 걸까요? 파업 때문에 피에 부정이 탄 겁니까?

정말 곤란한 건 이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피를 내어주겠다는데 행사 내용과 배경을 따지는 것이 더 불순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파업노동자가 다치면 헌혈하지 않을 건가요? 생명을 다투는 그 피보다 파업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건가요? 

헌혈차가 파업현장에 나타났다고 헌혈단체가 파업을 지지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정도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헌혈차가 파업현장에서 나타남으로서 효과를 보는 건 노조입니다. 그렇게해서 노조는 파업정당성을 시민들에게 더 널리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헌혈차가 노조의 파업현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이런 노조의 홍보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노조의 파업홍보에 조금이라도 기여할까봐 두려워 수백명의 소중한 피를 헌혈받지않겠다는 것입니다. 헌혈차를 동원한 행사는 이미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 기업은 되는데 노조는 안된다는 걸까요?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피를 주게다는데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동자들은 자신의 소중한 피를 차별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모멸이있을까요? 대한민국은 누구나 헌혈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파업노동자는 헌혈도 하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헌혈하다 차별받고 상처받는 나라입니다.

어떡할까요? 파업을 그만둘까요? 헌혈을 그만둘까요? 피는 전쟁터도 가리지않습니다. 적군도 수혈받습니다. 적군도 가리지않는 피가 파업노동자는 가립니다. 참 기가막힌 나라입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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