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부산지하철공사의 신입사원 모집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부산지하철 노동조합 게시판에서 취업준비생 간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논쟁의 원인은 철도운전면허였습니다. 부산지하철공사는 공개경쟁과 함께 철도운전면허를 소지한 사람에 한하여 제한경쟁도 모집했는데 문제는 철도운전면허를 소지한 수험생들이 기관사 뿐 아니라 운영직과 기술직에도 배치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2월 7일 부산지하철공사의 입사시험이 있었는데 경쟁률이 50:1에 육박했습니다. 거의 교실 두 개 당 한 명 정도 합격하는 수준의 치열한 경쟁입니다. 그러나 철도운전면허를 소지한 수험생은 이날 시험장에 없었습니다. 제한경쟁자는 시험 없이 면접을 통해서 선발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한경쟁에 도전한 수험생의 경쟁율은 2:1입니다. 제한경쟁을 통해 선발되어 운영이나 기술직에 배치되는 사원들은 공개경쟁보다 훨씬 수월한 경쟁과 과정을 거쳐 입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제한경쟁을 두고 불공평한 경쟁이라는 하소연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개경쟁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철도운전면허소지자만을 대상으로하는 제한경쟁을 함께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고 철도운전면허를 소지한 수험생들은 철도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만원을 들인 과정이 있음을 드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재반론과 재재반론들이 이어졌습니다.  




철도운전면허는 지하철 취업준비생만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해 현재 진지한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지난 2월 3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민주당 김진애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주최한 시민안전을 위한 올바른 철도안전법 개정 토론회가 열렸는데 이날 토론한 핵심적 내용이 바로 철도운전면허 제도의 문제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문제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철도운전면허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빼면 일본이 유일하게 철도운전면허제도를 운영하는 나라인데 일본은 우리와 달리 철도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인에게 절대 철도운전면허를 내주지않는다고 합니다. 이건 상당히 큰 차이입니다. 한국은 철도 운전 경험이 없는 자가 실제 운행에 투입될 수 있지만 일본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일본에서 기관사로 재직했던 JR동노조의 기미즈카씨가 확인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철도운전면허 제도를 도입한 배경도 살펴봐야 합니다. 철도운전면허 제도는 2003년 벌어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철도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도운전면허는 도입 당시의 취지를 살려서 운영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재 철도운전면허는 철도 안전을 위한 기관사의 체계적 육성이나 교육보다 기관사 구직자와 회사 내의 대체 인력 확보를 위해 더 많이 쓰이는 실정입니다. 부산지하철이 철도면허소지자를 비승무직까지 특채한 것도 지하철 4호선의 무인운전을 위한 기관사 예비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볼 때 철도운전면허 제도가 애초 취지와 반대로 오히려 지하철의 안전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철도운전면허 제도는 취업수험생의 입장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철도운전면허 제도가 활성화 되면 취업수험생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부산지하철 입사시험엔 같은 직종을 두고 두가지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쪽은 시험없이 면접만으로 보는 2:1의 제한경쟁이고 다른 한쪽은 시험도 치고 경쟁율도 그보다 수십배나 높은 50:1인 공개경쟁입니다. 취업수험생이라면 어떤 경쟁에 뛰어들고 싶겠습니까? 당연히 2:1의 경쟁입니다. 부산지하철의 입사시험이 알려지면 수험생들은 너도나도 철도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철도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선 7개월 간 7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교육기관이 서울에만 있기 때문에 지역 수험생은 1000만원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취업수험생은 취업을 위해 7개월의 기간과 1000만원 가까운 비용을 더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 수요의 증가는 취업수험생 뿐 아닙니다. 부산지하철 사례가 알려지면 다른 지하철도 대체 인력 양성과 효율화 등을 위해 부산지하철과 같은 제한경쟁을 도입하면서 철도운전면허 교육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수험생의 2:1 경쟁 수요는 각 지하철의 제한경쟁 공급수요에 비례하여 또 증가할 것입니다. 이것만해도 엄청난데 교육 수요를 증가시키는 강력한 압력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국토부는 앞으로 철도운전면허 교육을 최단 3개월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불난데 기름을 끼얹는 꼴입니다. 보다 유리한 경쟁수요와 제한경쟁 공급수요에다 진입경쟁 철폐까지 맞물려 교육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철도운전면허 교육기관들은 이 수요에 맞추어야 한다는 핑계로 교육생을 늘리면서 엄청난 학원비 수입을 올리고 이런 시스템의 고착화를 시도하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취업수험생들은 회사의 운전교육비용 외에 교육기관들을 먹여살리는 비용까지 부담하게 됩니다. 부산지하철의 제한경쟁 입사시험이 바로 이러한 취업수험생 착취 제도에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철도운전면허 제도는 회사가 부담해야할 기관사 교육 비용을 구직자들이 스스로 부담하므로 회사로서는 경영효율화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기업의 비용축소를 환영할 수 없습니다. 인력 유동성이 낮아 기업 자체의 교육으로 인력을 확보하는 게 타당한 기관사 교육을 구직자들에게 맡김으로써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면허 취득 수험생이 기업 정원의 몇배가 되면서 기업 효율화 비용의 몇배가 수험생에게 전가됩니다. 기업이 응당 맡아야할 인력 교육을 회피함으로써 사회에 엄청난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철도운전면허 제도가 애초의 취지아 달리 현장에 적용되더니 이제는 애초의 취지와는 완전히 벗어난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안전이 아니라 효율을 높이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회 전체적인 효율이 아닌 기업 경영진 일부의 효율화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다 또 어떤 큰 사고가 벌어질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래는 공청회 현장 사진입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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