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4일, 부산지하철 제 3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날따라 위원장의 개회사가 진지하고 무겁습니다.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도 엿보입니다. 

"오늘 역사적인 날입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작년말 부산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통합했습니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부산지하철 노동조합의 한 지부인 서비스지부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78명의 노동조합 대의원 중 서비스지부 대의원들은 14명입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대의원 대회에 그들은 기존의 부산지하철 노동조합 대의원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합니다.  




그렇다면 4월14일이 특별한 날인 건 왜일까요? 이날 새로 가입한 서비스지부의 단체교섭안을 확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서비스지부의 단체교섭안이 통과되면 지난 대회 때 통과된 정규직 조합원의 단체교섭안과 함께 노사협상에 나서게 됩니다. 두 단체교섭안 중 하나라도 합의되지 않으면 부산지하철노사 교섭은 합의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지부 단체교섭안 확정과 함께 부산지하철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진정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제 1호 서비스지부 단체교섭안을 확정하기 전에 안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정규직 대의원 한 분이 서비스지부 단협안의 22조를 지적합니다. 

"왜 정규직 단협안은 90일인데 서비스지부는 60일입니까?"

정규직 대의원이 지적한 것은 왜 같은 조합원인데 서비스지부는 정규직 조합원보다 30일이 적냐는 것입니다.  




서비스지부의 사무차장이 답변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병가 및 휴직은 원래 없던 조항으로 서비스지부가 부산지하철 노조의 자격으로 새로 삽입하려는 조항입니다. 그래서 정규직과는 차이는 있지만 모든 걸 한꺼번에 정규직 수준으로 높이기는 쉽지않아서 조금 낮춘 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31조 해고조항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왔습니다. 4항의 "정신 및 신체장애로 직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회복이 불가능할 시(단 의사진단서 첨부)"가 의사진단서만 갖추면 해고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려 마치 사측이 정한 해고의 요건으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이의가 받아들여져 이 말은 "의사가 판단한 자"로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단협안을 다듬는 과정에서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조합원은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습니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은 서비스지부 조합원의 현재 상황과 그간의 흘러온 과정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날 대의원 대회를 지켜본 글쓴이의 느낌을 잠깐 밝혀도 될까요. 완전 감동이었습니다. 이날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대한민국 노동자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되어 사용자를 상대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역사가 부산지하철 노동조합 대의원 대회에서 일어났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원이라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이날 확정된 협상안으로 사측과 교섭을 벌여야합니다. 그런데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서비스지부가 포함된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법외노조라 조정신청 대상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조합가입이 위법이라며 노동청에 시정명령도 요청한 상태입니다. 부산지하철 사측은 서비스지부 조합원과 함께 한 집회에 대해서도 부산지하철 직원이 아닌 청소용역노동자들이 보안규정상 제한된 지역인 본사를 허락없이 출입했다고 시비를 걸고있습니다. 

역사가 완벽하게 새롭게 쓰일려면 아직 산을 좀 더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통합노조 여기까지 오면서도 무수한 산을 넘었습니다.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간단하진 않겠지만 넘어왔던 그런 산들 중에 하나들일 겁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이 산들을 넘어가겠습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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