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열렸던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조합원 결의대회에 대해 부산지방경찰청의 기재사항 보완통고가 있었습니다. 부산지방경찰청에서 보완을 요구한 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주최자의 위임을 받은 위임장을 제출하고, 둘째는 일출·일몰시간을 정확히 기재하고, 셋째는 집회의 구체적인 집회행진 방법을 명시하고 약도를 첨부하라는 것입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고도의 기본권으로 허가제가 아닙니다. 집회 신고를 하는 것은 집회의 주최자가 질서유지 등을 위해 국가기관과 협력의 의무가 있어 그 의무를 다 하고자 하기 때문이지 집회를 허가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부산지방경찰청이 마치 허가권자의 재량인 것처럼 통고를 하는 식으로 부산지하철노동조합에 집회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 모습은 아니라는 겁니다.   

집회와 관련한 판례들도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합니다. 대법원은 1990년 8월 판결문에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하고자 하는 자로 하여금 관할 경찰서장에게 그에 관한 소정의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취지는 신고를 받은 관할 경찰서장이 그 신고에 의하며 옥외집회 또는 시위의 성격과 규모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적법한 옥외지회 또는 시위를 보호하는 한편 그로 인한 공공의 안녕질서를 함께 유지하기 위한 사전조치를 마련하고자 함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대법원 1990. 8. 14. 선고 90도870 판결 참조)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경찰서장이 신고서 내용의 미비함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산지방경찰청의 보완통고가 집회신고서의 원래 취지를 벗어난 내용임에도 시일의 촉박함과 원활한 업무추진을 위해서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은 일단 보완요청에 응하고 보완된 기재사항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기재사항의 보완이 아니었습니다. 부산지방경찰청이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집회시위를 어렵게 하는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4월23일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집회에 대해 차도가 아닌 인도로만 허용하는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조합원은 3천 명이 넘습니다. 4.23일 집회는 적어도 500명 이상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규모의 참가자가 인도로 행진하게 된다면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어렵고 인도의 시민과 충돌할 위험도 있습니다.

집회의 행진을 인도로만 허용한 것은 분명 예년과 다른 방침입니다. 작년 집회 신고서를 봐도 알 수 있듯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행진은 차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차도행진이 금지된 것은 올해부터입니다. 올해 초 있었던 한진해운집회에서부터 경찰이 차도 행진을 막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경찰과 집회 주최측 간의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경찰이 집회의 행진을 인도로 제한하는 법의 근거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2조 1항입니다. 이 법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그동안 적용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수도권을 시작으로 적용되고 있는 법입니다. 


1. 관할 경찰관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 
2.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도로를 행진하는 경우에는 제 1항에 따른 금지를 할 수 없다. 다만 해당 도로와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으면 제 1항에 따른 금지를 할 수 있다. 


만약 시행령에 기재된 도로가 모두 금지된다면 이를 피하고 집회가 행진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12조 1항을 핑계삼아 도심지 내의 집회 행진을 아예 차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집회 주최측은 시위 효과를 거의 거둘 수 없게 됩니다.  

관련 판례는 12조 1항의 적용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의 2007년 판결문은 "교통소통의 일부 장애는 참가인원 및 집회시간, 방송용 차량의 대수 제한 등의 적절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교통 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건 집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이 사건 처분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서 재량권의 한계를 넘은 위법한 처분이라"고 적고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2007. 7. 13. 선고 2006 구합 2441 판결)

집회와 시위에 대해 찬반 간에 여러 대립되는 쟁점이 있을 수 있지만 뭉뚱그려 요약하면 시위로 인한 불편의 감수와 시민의 주장으로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로교통 이용자는 집회로 인한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주장을 알리러 온 사람은 절박한 상황을 호소합니다. 따라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은 이 둘 사이의 합의선에서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되어야 할까요? 제 생각은 시민이 불편을 최대한 감수하는 쪽이여 한다는 것입니다.

집회의 행진으로 인해 도로교통 이용자의 시간이 지체되긴 하지만 그 시간은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감수하는 시간과 수고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주장을 한다면 어느 사회든 들어줘야 하는 게 민주주의 이전에 인지상정입니다. 짜증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타인의 주장을 듣지 않는다면 나중에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알릴 수 있겠습니까. 타인의 주장을 듣는 게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죽은 것입니다. 

듣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습니다. 듣고 들어주지 않으면 세상은 힘을 가진 자에 의해서만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와 시위는 사회 구성원이 최우선 적으로 감수해야할 것 중 하나입니다. 지금 경찰은 시민들이 도로에서 무심코 내뱉는 짜증을 힘있는 사람들 세상을 만드는 벽돌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그 벽돌을 당장 내려놓으라고 경찰에게 말해야 합니다. 


* 이 글은 4월 23일 이전에 작성된 것입니다. 
Posted by 커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