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트위플 몇 분과 함께 부산일보 편집국장님을 만났습니다. 이날 만남은 부산지하철노조가 주최한 부산일보노조를 지지방문하는 행사였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공교롭게도 이정호 편집국장이 직무정지를 당하기 전날이었습니다. 편집국장실에 들어선 시각이 오후 6시 쯤이었으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을듯합니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정수재단 문제와 부산일보 사원의 투쟁에 관한 우리의 질문에 답하며 그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트위 : 먼저 88년 도입된 부산일보의 편집국장 추천제도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다른 언론사에도 상당한 자극이 된 제도로 알고 있는데.

 

이정호 : 예전엔 거의 뭐 관보였습니다. 80년대 사장 중에 한 명은 어떤 말을 했냐면 '부산일보는 숙명적 여당이다.'라고까지 했습니다. 서울신문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정부 소유다보니 거의 정부 홍보지 비슷했어요. 부산일보도 그랬습니다. 그러다 87년 민주화 대투쟁 후 88년 부산일보 노조가 파업 등을 거쳐 단협에 편집권 독립을 명시했습니다. 편집국장을 사장이 임명하면 바로 '아이고' 하면서 충성할 거 아닙니까. 편집국장은 기자들이 직접 뽑기로 했습니다. 절충 끝에 기자들이 뽑은 3인 중 한 명을 사장이 선임하는 방식으로 경영진의 임명권을 존중해줬습니다. 3인 추천이라지만 최다 득표자가 선임되었으니 실질적으로는 기자들이 뽑은 셈입니다. 표차이가 뻔히 보이는데 더 낮은 득표자를 뽑기는 어렵죠. 이후에 한겨레 경향이 이걸 도입을 했거습니다. 일부는 포기하고 일부는 사장이 임명하면 기자들이 임명 동의하는 식으로 갔는데 우리는 3인 추천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트위풀 : 편집권 독립도 중요하지만 부산일보 기자들 의지도 중요할 거 같습니다. 부산일보 사내 문화는 어떻습니까?

 

이정호 : 언론사 내부의 문화도 중요한데 편집국장 추천제뿐 아니라 노조산하 공정보도 위원회도 있습니다. 활동이 활발합니다. 지면이 수상하다 싶으면 바로 국장 콜해서 공격합니다. 심하다 싶을 땐 대자보도 붙이고 그럽니다. 제가 88년 입사하고 언론민주화 수혜세대입니다. 제가 기자 배울 때는 그런 환경에서 배웠어요. 솔직히 말하면 부장 국장들이 평기자들로 구성된 공보위에 꼼짝 못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20년 이상 문화가 내려왔습니다. 그런 제도가 만들어주는 언론사 내부의 문화가 부산일보에 정착되어 있습니다.

 

트위풀 : 부산일보의 사내문화가 편집국장님께도 영향을 끼친 거 같습니다. 지금 사측에 맞선 편집권독립투쟁 최일선에 서 계신데.

 

이정호 : 내일부터는 법원 가처분이 이상하게 나서 회사 밖으로 나가야 됩니다. 직무정지에 출입금지까지 당했습니다. 회사의 징계에 대해선 불복해서 업무를 해왔고 1차 징계는 제가 승소했습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다른 방법으로 재 징계를 했습니다. 저도 다시 거기에 대항해 출근해서 정상적인 업무를 봐왔는데 판사가 무슨 생각인지 회사의 징계를 인용해버렸어요. 어제(7월11일) 결정났고 오늘 간부들과 기자들에게 알렸습니다.

 

트위풀 : 편집권 독립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편집국장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편집국장이 편집권 독립을 위해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간부로서 노조의  투쟁에 함께하는 것에 부담이 있으실텐데.

 

이정호 : 정수재단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경영진으로 임명되고 그 경영진은 신문이 어찌되든 상관없이 재단에만 충성하면 생명이 이어집니다. 몇 십 년 동안 지속된 이 나쁜 관행을 탈피하는 싸움을 노조에서 해왔습니다. 그게 이슈화 안되다 이번에 크게 붙은 겁니다. 저는 노조는 아니지만 그 싸움은 타당하다 봅니다. 징계를 두 번이나 받았는데도 기자들의 지지가 없다면 제가 하루라도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편집국장 되었을 때 터진 일입니다. ‘편집국장은 중요한 부서고 간부기 때문에 사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항내지는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이렇게 된 건데 편집국장으로서 하느냐 마느냐 이런 건 의미없습니다. 누구라도 어떤 직책에 있던 자신이 생각하는 걸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김병국

 


트위풀 : 11월 30일 발행중단 사태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시죠. 그날 사태의 중심에 계셨던 편집국장님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이정호 : 그전에 18일자에 한번 해프닝이 있었어요. 정수재단 사회환원을 요구하는 노조가 언노련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그건 공개된 행사고 공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거 아닙니까? 기사를 싣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경영진에 메모는 올립니다. ‘이런 걸 싣는다.’고 하니까 회사에서 ‘빼라.’ 이렇게 된 겁니다. 그거로 실랑이를 많이 했습니다. ‘빼라.’ ‘못 뺀다.’ ‘그럼 기사 내용을 좀 바꿔라. 재단 쪽 반론을 반 넣어라.’ 우리가 반론을 반 넣고 그러진 않거든요. 그럼 기사가 안 됩니다. 2시간이 늦어졌어요. 보통 11시(오전) 되면 윤전기 돌고 11시 10분 되면 배달이 시작됩니다. 빨리 배달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게 두 시간이 늦어졌어요. 신문이 중지된 그날(30일)도 메모 올렸죠. 정수재단 문제 다루는 걸로 해서. 10시50분쯤 되면 돌려야 되는데 윤전기가 안도는 겁니다. 사장이 임원들 모아놓고 쑥덕공론 하다가 '오늘 신문 안돈다. 저런 기사 실을 거면 앞으로도 돌리지마.' 하고 가버렸데요.

 

트위플 : 쿠데타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신문이 멈출 수 있죠?

 

이정호 : 신문이 안돌아가는 건 굉장히 큰 사고입니다. 광고주와의 문제도 있고요. 문제는 다음날이었어요. 사장이 또 신문 발행을 중지시킬 수 있는데 부산일보는 사장 회사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야할 회사거든요. 노조가 중심이 돼서 이번엔 ‘사장이 뭐라하든 무조건 돌리자.'며 돌려버린 겁니다. 윤전기에도, 발송에도 다 노조원들이니까 노조중심으로 경영진을 배제하고 신문을 만든 거죠. 노조위원장이 윤전기 버튼을 누르니까 노조원들이 박수 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단은 꿈쩍도 안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 재단이사장이 여든다섯입니다. 3공화국 향수나 충성도도 높은 분이기 때문에 노조중심으로 움직여도 눈 하나 깜짝 안합니다.

 

 

 


트위풀 : 부산일보의 투쟁이 이슈화된 건 지난해 11월30일지만 이 싸움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습니다. 비민주적인 사장 선임으로 인한 편집권 위협과 전 이사장인 박근혜로 인한 기사의 공정성 시비를 우려한 노조가 몇 년 전부터 민주적 사장 선임제를 요구했습니다. 성과도 있었습니다. 합의문을 세 차례나 썼고 작년 2월엔 최종합의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이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나중에 만나 들어본 이호진 노조지부장 말은 이랬습니다.

 

 

이호진 : 2005년부터 요구했고 노사간에 합의문을 세번이나 썼습니다. 그걸 다 무시했죠. 작년 2월에 최종합의까지 썼는데 '앞으로 그런 활동하지 마라.'고. 저희도 작년들어 그런 움직임을 본격화 하려한 건 대선과 총선이 있고 박근혜가 대선에 나올 게 분명한데 양대선거를 공정하게 치를려고. 그런 제도가 없으면 부산일보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의원에게 편지도 보냈습니다. 결국 누가 관리하느냐가 핵심인데 재단 이사장들 누구냐면 지금은 박근혜 의원과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박근혜와 관련있다 주장하는 거고요. 부산 지역 신망있는 사람들로 다시 만들던지 이사회 추천 제도나 절차를 만들던지 해야죠. 최필립체제의 재단이라도 경영진 선임 수용하겠다 그렇게 되면 저희도 투쟁할 명분이 없죠. 그렇게 안하는 건 그만큼 부산일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고...

 

 

©김병국

 

 

트위플 : 부산일보는 10대 언론에 들어가는 신문사입니다. 발행부수가 20만부나 되고 수익구조도 괜찮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정호 : 문제는 장래성이죠. 여기 계신 분들도 인쇄매체가 아니잖습니까? 뉴미디어가 급속도로 발달하다보니까 인쇄매체가 많이 다운된 상태입니다. 뉴미디어는 장비도 필요 없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뉴미디어에 더 친숙하니 수익구조가 안 좋아집니다. 게다가 부산일보가 큰 조직이라 이에 대응한 변화도 빠르지 못합니다. 이걸 돌파해서 바꾸는 게 관건입니다. 뉴미디어쪽으로 컨텐츠를 유료화 하진 못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경우 ‘컨텐츠는 공동소유다.’ 이런 마인드가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컨텐츠 생산하는 회사지만 이전엔 제조업에 가까웠습니다. 기사는 컨텐츠지만 그걸 가공해서 배달을 을 할려면 공장에서 윤전기를 돌려야 합니다. 지금은 미디어산업이 제조업이 아니고 서비스산업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건 컨텐츠입니다 신문, 방송에 제공하며 그걸로 수익을 얻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트위플 : 정수재단 지배 하에선 이런 변화가 힘들겠군요.

 

이정호 : 매킨지 컨설트 예측으로는 언론기업 매출에서 뉴미디어부분이 현재 10% 정도인데 10년 안에 48% 될 거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감합니다. 언론은 편집권 독립을 지키고 권력을 감시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사회의 변화에 몸도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재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닌다. 재단이 경영진을 결정하면서 이런 자질을 안 보고 재단에 충성하는 사람을 선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트위플 : 여당 일색인 정치 환경에서 부산일보까지 편집권을 지키지 못한다면 부산의 정치 환경은 훨씬 더 어려워지겠죠?

 

이정호 : 정치적으로 편향되선 안된다고 봅니다. 부산은 잘 아시겠지만 용광로 같은 도시입니다. 해방 후 해외 빠져나갔던 이주민들이 다 부산을 통해 귀국했고 ‘육이오’ 땐 전국의 사람들이 부산으로 다 왔습니다. 부산은 개방적인 도시입니다. 부산은 타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배격하고 그런 거 없습니다. 열려있는 도시입니다.

 

 

 


트위플 : 사회부장도 징계위에 회부되었다던데 뭐 때문이죠?

 

이정호 : 정수재단 기사 나오는 핵심부서가 사회부입니다. 사회부장이 칼럼을 쓰는데 쓸 때마다 박근혜 거론했죠.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거 엮어 사건 만들어서 징계위에 회부하더군요.

 

트위플 : 박근혜 후보는 어떻습니까? 정수재단을 사회 환원하는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보십니까?

 

이정호 :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영향력은 있는데 의지가 좀 왔다갔다 하는 거 같습니다. 그 주변에 포진한 인사들이 대부분 3공 때 사람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 혼자 결정하진 않을 거 아닙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문제는 하나를 건드렸다 인정이 되면 줄줄이 터지게 됩니다. 캠프가 박정희 관련해선 강공으로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트위플 : 내일(7월13일)부터는 계획이 어떻습니까?

 

이정호 : 법률적으로 회사에 출입하지는 못합니다. 후배들과 의논 해봐야겠죠.

 

 

사진 출처 : 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

 

이정호 편집국장을 만나고 나왔을 때 시각은 오후 7시였습니다. 5시간 뒤면 이정호 편집국장은 편집국장실에 들어올려면 벌금 100만원을 각오해야 합니다. 다음날 이호진 부산일보노조지부장은 이정호 편집국장이 후배들이 만든 부산일보 사옥밖 계단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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