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사실 목숨을 걸었죠. 왜냐면 그럴 수밖에 없던 게 내 주변에서 광주에서 죽어나는 사람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었죠. 제가 인천에서 노동운동하던 거 그게 007영화였어요.




4월4일 진보신당사무실에서 노회찬대표를 인터뷰했다. 지금 노회찬대표는 자신의 수배생활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직전이다. 수배생활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자 노대표 목소리에서 탄력감이 느껴졌다. 여기서 잡아당기면 탱탱한 줄에 노회찬대표의 생생한 얘기들이 걸려나올 것이다. 눈빛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땡겼다.


 

몇월 며칠 몇시에 일간스포츠를 펼쳐놓고 선담배를 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철수씹니까?' 하고  물어봐서 '예' 그러면 앉고 '예?'하고 반문하면 잘못봤습니다 그러고 나오는 거고. 

내가 누구랑 약속했는데 그 장소에 5분 안에 안나오면 자리 떠야 되요. 시간 칼같이 지켰어요. 그 친구가 잡혀갔을 수도 있고, 고문이 못이겨 누굴 데려 올 수도 있잖아요. 5분 지나면 사고 난 걸로 간주하고 떠야되요. 그리고 난 집에도 들어가면 안되요. 이럴 때 대비해서 제2포스트도 만들어두었죠.



진짜 007영화에서나 볼법한 걸 얘기하신다. 너무 과잉경계 아닌가? 아니다. 노회찬대표는 실제 사고난 접선자가 데려온 경찰과 맞닥뜨리는 위기의 순간을 겪었다.


나하고 만나기로 한 친구가 안나왔어요. 이상하게 생각했지. 어디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 몇 페이지에 그 다음 약속 장소를 적어놓기로 했어요. 거기 갔더니 그게 있는 거예요. 그럼 나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별 거 아닌 사유로 못 나와서 다시 만나려고 적었을 수도 있고, 잡혀가서 못나왔다가 거기서 다 털어놓고 나를 엮으려고 적었을 수도 있어요.



구수한 목소리에 어수룩해보이는 첫인상인데 상황판단은 치밀하시다. 노회찬대표는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적어놓은 그 장소에 미리 가서 혹시 그 친구가 혼자 들어가는지 누군가와 같이 들어가는지 지켜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들어가는 걸 못 본 거예요. 다른 데로 들어가는 데도 없는데. 미리 근처 다방을 물색해놓고 (약속장소로) 전화를 했죠. 그런데 그 친구가 받는 거예요. 그 다방은 좀 그거 하니까 옆에 있는 다른 다방에서 보자 그랬죠. 혼자 나오는지 같이 나오는지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여러명이 나와요. 경찰들도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고, 얘는 잡기 힘들다 생각하고 돌아간거죠. 

 

내가 안했어요 우리 노조 박은주차장 작품입니다.


 

영화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노회찬대표 007을 진짜 리얼버라이어티로 하셨다. 노회찬대표 전화만 받고 허탕친 경찰들은 참 많이 약 올랐을 듯 하다.

그러나 이렇게 치밀한 경계를 했음에도 조직원들은 하나 둘 경찰에 붙잡혔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그게 인간의 한계였다.


진짜 의지가 투철하고 체력 좋은 사람도 하루 버텼어요. 그건 인간의 육체적 한계예요. 신념이나 조직을 배신해서가 아니예요. (고문에 못 이겨) 불 수밖에 없었죠. 나중에 박종철 죽은 거 봐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처음 만날 땐 본명을 안썼죠. 인적사항도 물어보면 안되는 거예요.

 

김근태전의원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진다. 약해보이는 몸으로 노회찬대표가 하루가 한계라고 하는 그 잔악한 고문을 다 견디어냈으니. 나의 한계는 얼마일까? 한시간? 십분? 

당시 노동조직의 대표였던 노회찬대표는 경찰의 집요한 감시망을 뚫고 7년 간이나 수배생활을 했다. 위기의 순간은 그 이후에도 여러번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제일 늦게 탔어요. 그리고 중간에 버스를 갈아탔죠. 그때도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데 기분이 이상해요. 신도림역에서 경의선을 갈아타려고 플랫폼에 섰는데 딱 느낌이 이상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기차가 왔는데 안타는 척하다 타니까 그 사람들도 갑자기 타더라고요. 백발백중이잖아요. 난 다시 나오고 그 사람들은 그대로 타고 가고. 

 

그러나 이렇게 수배의 달인이었던 노회찬대표도 1989년 결국 잡히고 만다. 들어보니 잡힐 수밖에 없었다. 아마 천하의 007도 이런 식으로 하면 잡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명 검거될 때 전 다행히 도망쳤어요. 그로부터 두달 후에 우리 조직원 중에 한 명을 만나야 될 일이있어서 대방동 다방에 갔는데 다방에 이 친구만 있는 게 아니예요. 둘러봤는데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해요. 얘기하고 십분있다 그 사람들이 덥쳐서 체포되었죠. 그들이 내가 만난 조직원을 몇 달을 미행한 거예요. 가는 곳마다 따라다닌거예요. 이 사람은 몰랐죠. 덥친 사람 중에 두명인가 세명은 딱 알겠더라고요.




노회찬대표를 체포한 사람 중에 구면인 사람도 있었다. 노회찬대표를 체포하려다 몇번이나 허탕친 수사관들이었다. 그래서 노회찬대표는 그들과 강제로 회포를 풀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잡느라 약이 올랐던 수사관들에게 몇대 더 맞았다고 한다.

노회찬대표의 수배생활 얘기를 듣고나나 그런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노회찬대표와 007, 이 둘이 첩보전쟁을 벌이면 누가 이길까? 난 노회찬대표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회찬대표의 사투리와 푸근한 인상에 다들 허를 찔릴 것 같다. ㅋㅋ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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