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부산지하철노동조합 농성모습이다. 그런데 투쟁 현수막에 뜬금없이 '평화용사촌'이 등장한다. 대체 평화용사촌이 부산지하철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각성'하라고 하는 걸까?
 
평화용사촌은 부산지하철 1호선 역사청소용역을 맡고 있다. 당시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청소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청소용역업체인 평화용사촌도 투쟁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평화용사촌은 부산지하철이 생긴 이래 1호선 역사 청소용역역을 30년간 독점계약하고 있다. 이런 파격적인 특혜가 가능했던 건 부산지하철이 30년간 평화용사촌과 단독으로 수의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지자체나 국가기관은 공개입찰이 원칙이지만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수의계약을 할 수도 있다. 지방재정계약법 시행령 25조는 수의계약에 해당되는 경우와 대상을 명시하고 있는데 평화용사촌은 '지방재정계약법 시행령 25조 7호 다목'의 '국가보훈처장이 지정하는 국가유공자 자활용사촌의 복지공장'을 들어 수의계약을 해온듯 하다.
 
그러나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수의계약은 '할 수도 있다'는 예외사항이지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다. 당장 1호선 청소용역을 공개입찰로 돌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전부를 수의계약하는 지하철은 부산지하철이 유일하다. 대구는 일부 공개입찰을 하고 있다.

 

 

혹시 부산지하철의 청소용역 수의계약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30년간 청소용역을 일개 관변단체에 갖다바친 부산지하철의 저자세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전국 지하철 수의계약현황을 보면 그런 의심이 강하게 든다.

 
지도 위에 펼쳐논 전국의 지하철 청소용역 수의계약 현황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지자체 집권 정당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여당이 집권한 지역은 수의계약이고 야당이 집권한 곳은 공개입찰이다.

 

지자체 집권 정당과 일치하는 수의계약 현황은 달리 말하면 부산이나 대구도 야당이 집권하면 공개입찰로 바뀔 수 있고 반대로 서울이나 인천은 공개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 서울지하철 청소용역은 재향군인회가 맡았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입찰로 바뀐 것이다.

 
 

 

 

부산지하철 청소용역 단체들을 보면 마치 관변단체집합소 같다. 도대체 이 단체들이 부산지하철을 깨끗하게 청소할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여기에 특수임무유공자회,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위훈용사복지회 등 대구지하철 청소용역 업체 이름을 더하면 관변단체 그림이 얼추 완성된다.


 

 

 

이들 관변단체들은 지방계약법 9조와 지방계약법 시행령 25조에 근거해 부산지하철과 수의계약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법조문 일치 여부가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 일단 적법이 확실한 업체는 상이군경회 하나다.  

 

 

 
 
평화용사촌의 경우 지방재정계약법 시행령 25조엔 '국가보훈처장이 지정하는 국가유공자 자활용사촌 복지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물품이라고 나와있는데 부산지하철 청소용역은 복지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다. 애국단체원과 한국노인생활지원재단은 지자체인 부산시의 허가를 받은 사회복지법인이 아니고 고엽제 전우회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 1조에 따라 설립된 단체가 아니다.
 
 

*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 1조에 명시하는 단체는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광복회,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가 있다.

 


이들 단체 중 최근 부산지하철이 불법임을 인정한 단체는 부산장애인총연합회, 부산광역장애인연합회, 장애인고용증진협회다. 이들은 법이 규정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아니라 사단법인이다.
 
그렇다면 올해부터 이들 단체만이라도 부산지하철에서 사라지게 될까?
 
그렇게 될 거 같진 않다. 어이없게도 부산지하철은 노동조합과의 협의 과정에서 이들 단체의 산하단체인 사회복지법인을 지명할 뜻을 내비쳤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법인 명칭만 바뀔 뿐 기존의 용역업체 그대로 가는 셈이다.

 

일반 업체라면 불법적 계약에 대해 페널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부산지하철은 불법이라도 절차를 변경해서라도 밀어주겠다는 태도다. 이쯤 되면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심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다.
 

 

 

 

2013년 평화용사촌이 부산지하철과 계약한 청소용역 금액은 71억이다. 2, 3, 4호선까지 하면 부산지하철 청소용역을 맡고 있는 관변단체에 흘러가는 돈은 수백억원이다 여기서 10%만 이윤을 남긴다 해도 엄청난 금액이 된다. 


 

 

 

이들 단체들은 용역비 외에 상당한 금액의 장애인 보조금도 받는다. 지난해 상반기 부산장애인총연합회가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만 해도 4천2백만원이다.

 

그런데 장애인보조금을 이들 용역업체가 받는 게 맞는 걸까? 장애인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이들 단체의 사무실이 아니라 부산지하철 현장이다. 장애인을 고용함으로서 평화용사촌에 어떤 업무부담이 발생한다는 걸까? 장애인 보조금을 받아야할 대상은 용역업체가 아니라 부산지하철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후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했다. 직접고용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했지만 서울시의 운영비용은 오히려 줄어들어 예산을 절감했다. 용역업체에 주던 중간관리비용이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도 남는 금액이었던 것이다. 

 

서울시의 직접고용 효과는 부산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같은 지자체니 서울시가 먼저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이런 일에 지역적 특수성이 있을리 없다.

 

그런데 외부적인 지역적 특수성이 있다. 정치적 환경의 차이다. 부산지하철에 들러붙은 관변단체들을 보노라면 청소노동자 직접고용을 주장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수의계약으로 형성된 이익구조를 지키려는 관변단체와 이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지역 정치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더 깊게 들어가면 '정치는 구조고 경제는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누리고 싶다면 본질적이어야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구조적이어야 한다. 바뀌길 원한다면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 다가가야 한다.
 
올해 6월 구조를 바꿀 시기가 돌아온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부산시민이 본질에 매몰되지 말고 구조를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고 부산시민의 세금도 아낄 수 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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