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모랑초등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모랑초등학교는 한국의 개인과 단체의 후원에 힘입어 올해 교실을 2배로 증축하게 된 학교입니다. 4월 27일 학교에서 증축식이 있었는데 여기에 희망참가자로 참석했습니다. 증축식 다음날 희망참가자들은 '제기차기', '양치질' 등 한국에서 준비해간 수업으로 모랑의 아이들과 하루를 보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엔 선생님들과 간담회를 갖고 학교 운영과 향후 계획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3일째인 마지막 날에는 모랑 지역주민들의 집을 방문하고 주민들의 생업인 돌을 채취하는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네팔은 경제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학교 교실을 지어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교육여건을 충족시키기 힘듭니다. 모랑초등학교 증축 후원을 주관하고 희망참가단을 모집한 이주노동센터는 이 문제를 무작정 지원하는 것보다 긴밀한 연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합니다. 소통이 없는 후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네팔이주노동연대의 회원들도 이러한 국제 엔지오 지원의 폐혜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희망참가자들이 모랑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선생님과, 지역주민을 만나면서 3일을 보낸 것은 소통을 통한 후원, 즉 연대를 위해서입니다. 네팔 모랑초등학교에서 보낸 희망참가자의 3일은 우리가 어떤 것을 나눌 때 네팔의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오래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느껴보고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5일 오전 11시 인천공항을 떠난 희망참가자들이 모랑에 도착한 것은 27일 오전 7시였습니다. 네팔 수도 카투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14시간을 더 들어가서야 모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모랑에 내렸을 때 우리가 가져간 가방엔 뿌연 흙먼지가 온통 덮여 있었습니다.

 

 

 

 

열악한 도로사정으로 심하게 흔들렸던 차는 희망참가자들에게 밤새 쪽잠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우기마저 평소보다 일찍 닥쳐 날씨는 덮고 무척 습했습니다. 그러나 당일 증축식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투만두에서 동행한 네팔이주노동연대 회원들과 증축식 행사를 점검하고 곧바로 모랑초등학교로 이동했습니다.  

 

 

 

모랑초등학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지마자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뛰쳐나와 우리를 둘러쌓습니다. 더위와 수면부족에 찌들렸던 몸이 아이들의 환대에 순식간에 기운을 차린듯 했습니다.

 

 

 

 

학교 마당엔 우리네 시골잔치날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청년들이 닭을 잡고 여자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채소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유난히 이주노동희망센터 조성애 사무국장에게 많이 매달렸습니다. 아마 초면이 아니라 그런 것 같았습니다.

 

 

 

 

 

행사장 중간에 아이들이 앉았습니다.

 

 

 

마을주민들과 초청된 인사들이 그 주변에 자리잡았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희망참가자들은 새로 증축된 교실을 둘러봤습니다. 기존 교실에 수직 방향으로 4칸의 교실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화장실과 세면대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다 완공되지 않았습니다. 증축식을 가지기엔 좀 부족해보였습니다. 네팔 타임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증축식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래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분이 모랑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신데 이날 사회를 맡았습니다. 이주노동희망센터 정의헌 대표가 인사말에서 세월호 참사로 한국이 비통함 빠져있다고 하자 부탁도 안했는데 참석한 사람들에게 추도묵념을 제안해서 한국의 희망참가자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증축 축하 플랜카드를 펼치고

 

 

 

 

테이프도 끊었습니다.

 

 

 

 

맨 오른쪽 하얀 모자를 쓴 사람은 모랑 교육청에서 두번째로 높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주노동희망센터 정의헌 대표가 네팔도 한국의 후원에 맞춰 정교사 2명 정도의 지원을 당부했습니다. 머리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확답을 주진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물론 아이들은 딴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카메라만 보이면 포즈를 취했습니다.

 

 

 

 

한국이라면 폭염이라고 호들갑을 떨 날씨 속에 행사가 2시간 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팔에선 예삿일이라고 합니다. 지난번엔 3시간이 넘었다고 합니다. 행사에 초청된 사람들의 인사말을 대부분 다 듣는다고 합니다. 중간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아이들 보기 미안해 생수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데 다행히 녀석들이 쥬스를 먹는 걸 보고서야 한 모금을 들이킬 수 있었습니다.

 

 

 

 

더위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아닌가 봅니다. 신이 난 아이들에겐 이 폭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주노동희망센터 정의헌 대표가 인사할 때거 거의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행사는 다행히 3시간은 안 넘겼습니다. 

 

 

 

 

이어서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아이들 먹방은 어디서나 귀엽네요.

 

 

 

학교에 관해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랑마을위원회, 네팔이주노동연대, 네팔노총지역위원회와 한국의 이주노동희망센터 4자가 MOU 체결을 마지막으로 이날 행사를 끝냈습니다.

 

 

 

 

둘째날인 28일은 아이들과의 수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보단 덜 열렬하지만 더 친숙한 환대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일일선생님에 집중하는 모랑초등학교 아이들.

 

 

 

그러나 말이 안 통하죠.

 

 

 

 

그래도 노래는 통합니다. 동요를 시켰더니 어디서 많이 들은 멜로디였습니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마리..." 한국말로 따라부르니 아이들도 신기해 합니다.

 

 

 

 

마을 주민들도 한국 선생님의 수업을 궁금해 합니다.

 

 

 

 

 

아이들이 가장 신이 났던 수업은 제기차기입니다. 처음 한지와 동전을 줄 땐 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더니

 

 

 

 

제기의 모양이 만들어지자 운동장에 뛰어나와 열심히 차기 시작합니다. 하루만에 제기를 10개 넘어 차는 아이들도 생겼다고 합니다. 내년 쯤엔 운동장에 제기차는 모랑초등학교 아이들을 흔히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치질 수업도 재밌어 했습니다.

 

 

 

 

 

네팔은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데 아이들 손씻기 교육이 잘 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업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오르간과 실로폰도 아이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습니다.

 

 

 

 

 

전교생 140여명의 사진을 찍어 즉석인화기로 인화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이 사진을 교실 뒤에 붙여 아이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존감을 높이고 그것이 아이들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가지 부탁을 드렸습니다.

 

 

 

 

공사에 쓸 시멘트가 아이들 교실 한 곳에 그대로 적재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걸을 때마다 시멘트 먼지가 풀풀 올라왔습니다. 대나무로 간이 창고라도 만들어 학교비품과 건설자재들을 따로 보관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교실의 시멘트는 우리로선 이해 안되는 장면입니다. 네팔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방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카투만두에서 만난 네팔이주노동연대 회원들에게 이처럼 네팔이 스스로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부분을 얘기했습니다. 네팔이주노동연대는 한국에서 일하다 귀국한 사람들로서 한국에서의 노동운동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자 착찹한 표정의 네팔이주노동회원들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적 사고로 네팔을 봐선 안됩니다."

 

사실 우리가 아동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최근의 일입니다. 60년대 우리나라 교실환경도 네팔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런지 모릅니다. 게다가 네팔은 수많은 민족과 종교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조화롭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적 리더쉽은 약합니다. 아동과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아직 싹트기 힘든 환경이고 있더라도 그걸 극복할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네팔에 대해 한국식으로 왜 그렇게 못하냐 몰아부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희망참가자들은 약 150키로의 물품을 들고 네팔에 왔습니다. 한도 초과라는 이유로 공항에서 제지당하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더 들고오겠다고 안간힘을 써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물품들은 전부 단체와 학교, 개인에게 기부받은 것입니다.

 

 

 

 

새 것만 기부받지 않았습니다. 학용품 대부분은 한국의 학생들이 쓰던 아주 것들입니다.

 

 

 

악기에는 쓰던 학생의 이름도 적혀있습니다.

 

 

 


크레파스는 아이들이 쓰던 것 중 큰 놈을 골라 한 통에 담아왔습니다. 이 크레파스는 네팔 아이들이 공동으로 쓰게 될 것입니다.


모랑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 살피고 한국에서 줄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해를 구하고 전해줍니다. 한국 아이의 손에서 네팔 아이이 손으로 넘겨진 학용품은 관계를 만듭니다. 그래서 후원이 아닌 소통과 관계를 통한 후원, 즉 연대라고 한 것입니다.

 

 


마지막날 아침 마을 원로께서 우리를 아침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집밥이라 그런지 여태 먹던 다른 달밧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네팔의 전통차인 찌아도 한잔 했습니다.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네팔의 집은 참 아담하고 예쁩니다. 테라스를 갖춘 이층집이 많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생계현장입니다. 여기서 채취한 돌을 깨서 건축자재로 팔고 있습니다.

 

 

 

 

집 앞에 깨야할 돌이 쌓여있습니다.

 

 

 


큰 돌 위에 올려놓고 깬다고 합니다. 모랑초등학교가 없다면 아이들 상당수는 여기에 앉아 돌을 깨고 있을지 모릅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이런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는 역할도 합니다.

 

교실의 시멘트에 대해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모랑의 주민들은 생계에 허덕이면서도 학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과거엔 점심 때 아이들이 집에 오면서 학교가 끝나곤 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직접 점심을 챙겨 학교로 가져온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더 오래 학교에 머물 수 있게 된 겁니다. 학부모들의 이런 자발적 노력은 네팔에선 흔치 않은 일입니다.

 

 


3일 간의 연대를 마치고 29일 오후 모랑을 떠났습니다.

 

 

 

 

3일을 지내고 나서 그럴까요? 이제 이 아이들이 네팔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로 보입니다. 사실 세상 모든 아이가 다 우리 아이 아닐까요? 네팔 모랑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이 더 오래 더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면 합니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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