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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정규직 노동자들은 2인 1조가 철칙이다. 설령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직원이 혼자 다녀온다고 해도 '그러다 큰일 난다며' 되려 간부들이 말린다.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이런 안전 마인드를 심어준 것은 공문이나 규정이 아니다. 과거 많은 선배 노동자들이 혼자서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하는 걸 보고 들으면서 2인1조 철칙을 가슴에 새긴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 정규직 노동자들은 혼자서 수리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년 다져서 쌓아온 안전 규정이나 문화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종이 몇 장으로 된 문서나 공문으로 전달받는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대부분 노동자들의 근무 년수가 짧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안전문화나 기술적 노하우가 쌓이지도 않는다. 이런 여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인1조가 왜 중요한지 체감하기 어렵다. 2명이나 희생되었음에도 바로 몇 달만에 3번째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은 청년들이 사고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조직의 위계질서는 약자인 청년들의 위험을 더 가중시켰을 것이다. 작년 강남역과 올해 구의역에서 희생된 두 노동자가 20대에 막내라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비정규직 외주화는 경영효율화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효율화가 아니라 청년의 저임금에서 이익을 짜내고 위험까지 떠넘겨 만든 아주 악질적인 청년 착취인 것이다. 


경영진과 간부들은 외주화에 대해 정부의 경영효율화 정책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외주화가 갈수록 확대되는 것이 정부의 정책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외주화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새로운 '을'을 만드는 것이다. 회사 내에 노조의 감시를 받지 않는 프리노조존이 생기니 경영진과 간부들 입장에선 반가웠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외주화는 경영효율화보다 경영갑질화에 더 가깝다.  


그래도 외주화가 비용을 절감해서 국민의 세금을 아끼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처음엔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조상 그 효과가 계속 이어지긴 어려워 보인다. 간부들이 퇴직하면 얼마 후 관련 외주 업체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외주업체는 간부들이 퇴직 후 일할 직장이 되기도 한다. 미래의 직장의 수익이 낮으면 미래의 직원도 불안해지지 않을까? 원청의 퇴직 간부를 수용하면서 하청업체는 수익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없을까? 그렇게 서로의 불안과 기대가 오고가면서 외주비용은 점차 상승할 수 있다.  


저임금으로 외주업체를 지탱하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영진과 간부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경영진과 간부들이 현직에서의 편리와 퇴직 후 일자리라는 이익을 누릴 수 있었을까? 이런 '을' 외주업체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아지는데 경영진과 간부들이 외주화를 마다할리 없다. 착취당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큰 빨대를 꽂은 건 경영진과 간부들이다. 


지하철 기관사가 되려면 자격증을 따야 하고 자격증을 따려면 인증받은 양성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후 테스트에 합격해야 한다. 그런데 2002년까진 이런 자격증 제도가 없었다. 기관사가 되고 싶으면 지하철 승무직에 응시해서 합격한 후 6개월 이상의 승무 교육을 받으면 되었다. 기관사 자격증제도가 생긴 것은 2003년 대구지하철사고 때문이다. 수만명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달리는 기관사에게 면허는 있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자격증제도는 기관사를 준비하는 취준생에게 큰 부담이다. 자격증 양성기관의 수강 비용만 5만백만원이 넘는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다시 지하철 입사시험에 도전해야 한다. 그전에 양성기관에 들어가는 것도 시험이 필요하다. 수강 비용 외에 이중 삼중의 수험비용이 든다. 돈이 없으면 기관사도 되기 어려운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청년들에겐 너무나 분통터지는 일이다. 국가의 잘못으로 지하철에서 사고가 났는데 결과적으로 취준생 청년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지하철 안전을 위한다면 자격증제도보다 더 확실한 방법으로 2인승무도 있다. 그런데 국가는 그런 방법은 배제하고 미래의 기관사 청년들에게 사회적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취업도 하기 전부터 청년들을 착취한 것이다. 


 



지하철 신규노선이 늘어날 때마다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지하철 정규직이 하던 일을 비핵심 업무라며 외주업체에 맡겨 조직을 줄이고 그렇게 만들어낸 인력을 새로운 노선에 투입한다. 그러면서 청년들은 지하철에 입사하지 못하고 외주화된 용역업체에 입사하게 된다. 구조조정으로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회사는 새로운 노선의 운영으로 적자가 확대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경영논리를 왜 미리 적용시키지 않는 걸까? 적자가 불가피한 노선이라면 애초에 만들지 말아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그 적자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 그 수조원의 돈을 다른 더 효율적인 데 투입하면 더 많고 더 좋은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하철은 이 적자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노선을 공약했던 정치인들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 건설업자들이 이 좋은 먹잇감을 그냥 없어지게 놔두지 않을테니까. 공사를 안하겠다면 부동산업자들이 난리를 칠테니까. 지하철은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해 적자사업을 강행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이익을 다뽑아먹고 남긴 적자사업의 뒤치닥거리는 청년들의 몫이다. 위험을 감수한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그들이 뽑아간 이익만큼 착취당해야 한다. 


혹시 기억할런지 모르겠지만 청년 고용촉진법이라고 있다. 공기업들이 한시적으로 정원의 3% 이상 청년들을 고용하라는 법이다. 법이 만들어질 공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법이 실행되자 그런 문제(?)는 없었다. 왜냐면 지키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 오히려 정부는 청년고용촉진법 준수보다 경영효율화 실행을 더 비중 높게 평가했다. 노조가 청년고용촉진법을 지키라고 하면 사측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 나라의 어른들은 청년을 착취한다. 온갖 훈계는 다 늘어놓고 지키지도 않을 생색까지 내면서 말이다. 구의역 사고에서도 어른들은 청년을 착취할 방법을 찾아낼지 모른다. 이 청년착취를 끊을 방법은 청년들이 '안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야 어른들은 청년이 고분고분한 약자가 아님을 깨닫고 착취를 멈출 것이다. 

Posted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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