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이상했던 것을 물어보면 꼭 안빠지고 나오는 대답이 있습니다. "아줌마가 남자화장실 들어와요." 남자화장실에 아주머니들이 드나드는 게 이상한 건 외국인 뿐만 아닙니다. 한국남자들도 소변을 잘 못본다거나, 수치심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입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은 어떨까요? 남자들이 위태롭게 소변을 보는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서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들은 남자들 우스개에 등장하는 그분들처럼 그냥 무덤덤할까요? 

부산지하철 1호선 노포동역 미화원 대기실을 찾아갔습니다. 미화원 아주머니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세분의 아주머니께 들어봤습니다. 




"남자화장실 들어가면 어떻습니까?" 

"이젠 하도 오래돼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 처음에는요?"

"아 그때야 쑥쓰러웠지요. 처음엔 한동안은 같이 안가면 남자화장실 못들어가요."

우리가 찾아간 부산지하철 노포동역은 화장실청소가 '빡시기'로 유명한 역입니다. 바로 옆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유입되는 승객과 5일마다 밀려드는 장날 손님들로 화장실은 항상 북새통입니다. 아주머니들 말에 의하면 터미널엔 양변기만 있어 좌변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지하철 화장실로 몰려 더 그렇다고 합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화내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화내는 남자들 많지요. '밤에 하지 와 낮에 하나?', '소변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갈란다.' 그란다 아입니까."

아주머니들은 이제 남자화장실 들어가는게 이력이 났습니다. 매일같이 들어가는 일터를 곤혹스러워 한다는 게 더 이상할 겁니다. 그렇다면 적응되었으니 아주머니들은 이제 괜찮은 걸까요?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혹시 남자화장실에서 못볼 걸 본 건 없으시나요? 봉변당하신 건 없는지요?"

"와 없어예 부지기숩니다. 못볼 거 많이 본다아입니까. 특히 술취한 사람들. 이상한 농 거는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보란 듯이 보여줍니다."

"바바리맨 같은 그런 거 말이죠?"

"우리는 그런 거 예사로 본다아입니까. 그래도 지금은 많이 없어졌어예."




문제는 이것 뿐만 아니었습니다. 남자화장실엔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오히려 여기에서 더 흥분을 많이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 화장실 중에 어디가 더 힘든가요?"

"당연히 남자지예. 벽에다 오만 이상한 낙서 다 하고. 우리가 그거 지운다고 죽을 판입니다. 내가  살이 다 빠져예."

낙서 얘기가 나오자 아주머니들은 저마다 한마디 씩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우면 하루 이틀만에 또 그립니다. 그림은 또 얼마나 잘 그리노. 낙서만 하면 되는데 벽에다 똥을 처바른 건 또 뭐꼬?" 

"남자화장실에 주로 낙서가 있단 말이죠?"

"전부 남자화장실이지예. 외설스런 낙서. '잘 해줄테니까 전화해줘' 그런 것도 있고. 여자는 없습니다."

"낙서는 어떻게 지우는데요?"

"물파스로 지우면 잘 지워져예."

아주머니는 좋은 정보를 알려준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스티커 같은 것도 있지요?"

"'신장사세요' 하고 유흥업소 스티커 천지로 있다 아입니까. 그거 때문에 사람 또 죽습니다. 금방 떼면 잘 떼지는데 시간 좀 지나면 안떼져요."

이왕 물어본 김에 다 갈때까지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기 막히면 어떻게 합니까?"

"어떡하긴요 우리가 다 뚫어야지요. 막 쑤신다 아입니까?"

"뭐 때문에 막히죠?" 

"주로 똥이지요. 이따만한 똥이 막히가지고. 안내리가요 안내리가."

* 죄송합니다 너무 적나라해서...

"남자화장실에 오바이트 같은 것도 많은텐데."

낙서 얘기할 때처럼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습니다.

"아이고 그거 하루도 없는 날이 없습니다. 오바이트는 매일 아침마다 치웁니다."

"정말 하루도 안빠지고 토사물이 생긴단 말입니까?"

"화장실만 있으면 다행이게예. 지하철역사 온데 다 있습니다. 기둥, 계단 여기저기 다 떡칠을 해놓습니다. 그거 치우는 게 아침 일입니다."

화장실 얘기는 속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서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듣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아주머니들께 다른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폐지 줍는 사람들 있지요?"

"요즘은 돈 안된다 아입니까. 작년 봄까지 많이 다녔는데 지금은 폐지 줍는 사람 없습니다."





"간혹 청소하는데 불평하는 승객들은 없습니까?"
 
"먼지난다고 민원 넣는다는 사람도 있어요. 승객들한테는 우리가 잘해도 미안하다고 하고 보냅니다. 다투면 우리만 손해지요."

노포동역 분임장(미화원 선임)님은 부산지하철 시작과 함께 일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터에서 24년 가까이 지낸 겁니다. 분임장님은 우스개로 자신이 '지하철 지킴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듣고 싶었습니다.    

"얼굴 알아보는 승객들도 있지 않나요?"

"인사하는 사람들 있지요. 음료수도 가끔 주고 그랍니다."

"기억나는 승객은 없습니까?"

"하루는 화장실에 가니까 아가씨가 청바지가 찢어져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대기실에 데리고 와서 청바지 손을 좀 보고 보냈지요. 다음날 고맙다고 음료수 한병 주더라고요. 그라고 어떤 여자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서 넘어갔더라고요. 여기로 데리고 와서 안정시키고 병원에 보낸 일도 있습니다."




미화원대기실 벽면에 노동조합 게시판이 보였습니다. 얼마전 정부에서 입법하려했던 60세 이상 최저임금 미적용 내용이 붙어있었습니다. 지하철미화원은 정년이 65세입니다.(63세 정년인 용역회사도 있다.) 만약 저 법이 통과되면 미화원 아주머니들에게 불이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저 법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를 표시하셨습니다. 아주머니들께 노조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고 노조구성해서 자기 권리 찾고, 지금 잘 된 거 아입니까. 옛날에 비하면 지금 사람들은 거저 묵는 거나 마찬가지지예. 우리가 노조해서 회사 못되게 하자는 게 아입니다. 우리가 약자니까 그 밑에서 벌어무야 하니까."

다른 용역과 비교할 때 지하철 미화원의 임금이나 근무조건은 유리한 편입니다. 지난번 인터뷰했던 부산지하철청소용역노조를 이끌고 있는 조선자지부장도 아주머니들이 노조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쉽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물을 끼얹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분 한분 설득하고 성과를 보여주면서 이제 부산지하철청소용역노조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선자지부장 인터뷰 : 여성노조위원장이 투쟁하는 법 


청소용역노조분들 모임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아주머니들이 모임 장소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는데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50대, 60대의 아주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노조모임 장소에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몰려드는 모습에서 마치 전쟁영화의 구원병이 나타나는 장면과 같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지하철에서 보는 흔한 아주머니들의 얼굴과 달랐습니다. 그때 연대하는 사람들은 당당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자신감에 찬 미화원 아주머니들 얼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용역 대기실의 장판 온기가 기분 좋았습니다.

"이 따뜻한 장판은 언제 깔았습니까? 회사에서 신경 쓰네요?"

"아이고 뭐라캅니까? 이거 우리가 다 깔았습니다. 그 전엔 그냥 장판을 갖다 쓰다가 2년 전에 장판으로 깔았습니다. 다 우리 공금입니다."

"냉장고는요?"

"냉장고 에어컨 전부 다 우리 돈입니다."

아주머니가 열어 보여주는 냉장고 안에는 부식꺼리가 가득했습니다. 한차례 청소를 마치고 나면 대기실에 모여 음식을 만들어 드신다고 합니다. 얼마전부터는 지하철 공사에서 미화원 아주머니들에게 쌀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보여주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흐믓한 웃음이 배어있었습니다. 미화원 대기실은 아주머니들의 아기자기한 삶이 펼쳐지는 '공동체터전'이었습니다.  그곳엔 소박한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분임장님은 호적이 잘못되는 바람에 정년 65세까지 아직 5년은 더 일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지하철에서 24년을 일하셨으니 처음 들어오실 때가 마흔 전인 듯 합니다. 젊은 시절을 이 일터에서 땀 흘리며 보내신 겁니다. 

분임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남자화장실 깨끗하게 쓰겠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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